Sunday, March 11, 2012

복이 있나니-III “온유한 자 갈렙” (4/21/2002)

본문 : 마태복음 5:5, 민수기 14:20-24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20)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22)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I. 서론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ain)’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5장의 “복 있는 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서부에 사는 ‘모레’ 족속은 온유한 사람을 “그늘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아마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늘 시원한 마음을 품는 사람을 의미하는 모양입니다. 아프리카의 동부에 사는 ‘킵시키’족속이 있는데, 그들은 온유함을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중부에 거주하는 ‘카바라카’ 족은 온유를 “어린이의 속 사람을 가진 것”이라고 한답니다. 똑같은 단어에 대한 해석이 지역마다 그리고 민족마다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온유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화를 내지 않고 다 받아주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온유한 자”의 의미가 정말로 그런 것입니까?

II. 본론
1. 온유의 의미
“온유하다”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 “praus”는 원래 “양 극단의 가운데에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씌었다고 합니다. 헬라철학자 Aristotle은 “극단적인 정열과 무감정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있는 덕스러운 상태”라고 해석하였고, 동양 사상에서는 이것을 “중용(Moderation)"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온유하다”는 말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가운데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편에 속하지도 않고 저 편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을 지키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과 16절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한 상태에 있다고 증거 하는데, 주님께서는 뜨거워야 할 때 뜨겁지 못하고 차가워야 할 때 차갑지 못한 그들의 태도를 미지근한 상태라고 하면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의미로 볼 때, “온유하다” 또는 “가운데에 있다”는 말은, 여호수아 1장 7절 말씀처럼,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여호와의 법을 온전함으로 지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말씀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에 대해서는 죽음 앞에 선다 하더라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경학자 Barclay 교수는 “온유하다”는 말을 “God-Controlled Life"라고 해석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치 공중에 매달아 놓은 하나의 밧줄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곡예사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면서, 세상적인 유혹을 물리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갈 때, 그 사람이 참된 “온유한 자”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누린다고 약속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모든 물질적 축복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모든 일에 형통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온유한 자” 즉 “God-Controlled Life”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이러한 원어적 의미에서 볼 때, 2. 온유한 자의 본을 보인 사람들 중에는 갈렙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땅을 차지한 사람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온유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갈렙을 본받아 땅을 차지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 축복도 함께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렙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3. 온유의 비결을 세 가지로 요약해 증거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온유한 자가 되려면, (1)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말은 사탄의 편에 서 있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거기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성도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닌, 중간에 서 있겠다”고 말합니다. 참 멋있는 말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중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닌가 하는 선택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본문 14장 3절 말씀처럼, “네가 나를 멸시하고 있다”고 평가하십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식이 부모의 반대편에 가 있으면 그것이 곧 부모를 멸시하는 태도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지 않으면, 그 자체가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모욕을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10절 말씀에서 보면, 갈렙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 불신앙의 태도를 보일 때, 갈렙은 옷을 찢어가면서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 일어나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갈렙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였습니다.
둘째로, 온유한 자가 되려면, (2) 하나님 약속 위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축복의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하더라도, 그 약속 위에 서 있지 못하고 흔들리면, 본문 22절 말씀처럼 결국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시험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흔들리지 않고 그 약속 위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갈렙을 향하여 “너는 나를 온전히 좇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4장 6절과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45년이 지난 후에, 그 약속을 들고 여호수아 앞으로 나갔습니다. 이 말씀은, 4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85세가 되어 노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갈렙처럼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건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온유한 자가 되려면, (3) 성취의 열정 위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그 성취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나 개인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열심히 그 일을 추진하다가 인내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다 해주시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온전함을 좇는 태도가 아닙니다.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과 13절에서 보면, 85세 노인이 된 갈렙이 직접 여호수아 앞에 나아와 간청을 합니다. 직접 싸움터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III. 결론
지난 2월에 신문에 실렸던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미국의 콜로라도 주 덴버에 사는 져스틴 채프먼이라는 8살 된 소년은 3살 때부터 천재성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지능테스트에서 역사상 최고 점수를 받았고, 5살 때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고, 6살 때부터 뉴욕 로체스터 대학 강의를 들었으며 SAT 시험에서 각 과목마다 80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어느 날, “채프먼이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채프먼의 어머니가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고 시험 점수를 조작해 오다가, 채프먼이 공부에 실증을 느끼고 거부하는 것을 받아주지 않자, 결국 8살의 나이에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풍요롭게 살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 있는 자”는 세상적인 방법이나 인간적인 술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고 인도하심을 순종하며 따라갈 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 “온유한 자” 되어,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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