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로마서 6:5-13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12)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I. 서론
오늘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환영합시다!
한자어 숙어에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던져서 새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농부가 황금 알을 낳는 닭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닭은 한 달에 한 번 황금으로 된 알을 낳았습니다. 농부는 곧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부는 그 닭을 잡으면 한 달에 한 개의 황금알이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인 닭의 뱃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농부의 인간적인 지혜는 한 가지 일을 통해 닭도 잃고 황금알도 잃게 하는
어리석은 지혜였습니다.
성경의 인물들 중 최고의 지혜자는 솔로몬 왕입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겼습니다. 그 때 솔로몬 왕은 “그 아이를 똑같이 반으로 쪼개서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여인은 그것이 좋다고
하였고, 다른 여인은 울면서 “제가 포기하겠으니 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솔로몬 왕은 아이를 포기하는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하고 그에게 아이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도 살고 어머니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하나를 통해 둘을 이루는 참된 지혜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한 가지 사건을 통하여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신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사망 권세가 깨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도 부활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II.
본론
우리가 받아야 될 1. 십자가의 교훈은 주님의 부활을 본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어 성경에서 “본받는다”는 말은 “같아진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과 똑같은 상태로 나도 부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오직 믿는 자들에 의해서만 증거
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퍼뜨리는 “부활은 거짓이다. 부활은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영생으로 들어가는 부활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모두 주님의 부활과 똑같은 부활에 참여하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받아야 될 2. 십자가의 교훈은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죽음이 없으면 완전한 부활도 없습니다. 주님이 죽으시지 않았으면 주님의 부활도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부활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고 죄가 전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죽어주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죽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죽으심”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씀 그대로, 자신이 그렇게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열매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고집과 계획이 여전히 살아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욕심이 여전히 나를 움직이고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자존심과 자아가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부활에 이르신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으시기를 바랍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3. 부활을 본받으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 가지로 요약하여 증거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할 일은 본문 5절 말씀처럼 (1) “그리스도와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원어에서 “연합한다”는 단어는
“함께 자라다”라는 말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합쳐져서 함께 자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에는 열심히 예배에
참여하고, 열심히 헌금도 하고, 열심히 봉사도 하는데, 교회 생활이 일 년, 이 년, 해가 거듭될수록,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출 뿐만 아니라,
남들이 하는 것까지도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그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전심으로
준행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깨닫고 점점 더 많이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하나님 말씀 듣기를 회피하고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 우리가 할 일은 (2)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자극을 주어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11절에서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는 말씀은 죄가 와서 유혹해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이라도 반응하면 이미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죄에 대하여 점점 더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를 피하고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찾아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나 계획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방향으로 계속 생각하고 계획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쉽게 잘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너무 너무 어려워하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또한 12절에서는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적인
악한 욕망이 와서 자극을 주어도 전혀 요동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육신을 만족시키는
일에 우선권을 부여한다면, 그 사람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니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는 자가 아닙니다.
셋째로 우리가 할 일은
(3)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살았다는 말은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반응하고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자극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11절 말씀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살아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반응하고 움직인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산 자의 구체적인 모습을 13절에서는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그리고 때로는 채찍과 막대기를 가지고 아무리 자극을
주어도 꿈쩍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는 전혀 반대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아니라 부활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영광스러운 부활만이 아니라 죽음의 모범을 보이신 주님의 고난도 함께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본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원토록 함께 자라 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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