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51:1-8 (1)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찌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항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I. 서론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blind date”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만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청년시절에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직장에 있는 어느 선배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자기 사촌 여동생을 소개시켜주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나는 그 선배가 너무나도 못생겼기 때문에, 저런 사람의 사촌 동생이라면 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하였지만, 선배는 “blind date”를 하도록 주선하겠으니 꼭 만나보라고 재촉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그 여자가 먼저 나를 싫어하게 하기 위하여 풍선껌을 씹어가면서 약속 장소로 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배가 자기 사촌 여동생은 껌 씹는 남자를 가장 싫어한다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멀리서 그 처녀를 본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촌 오빠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예쁘게 생겼고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어 아무도 모르게 풍선껌을 싸서 주머니에 넣고 처녀가 앉아있는 자리로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 선배님과 같은 직장에 있는 Mr. Kim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내 인사를 받은 그 처녀도 일어서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Miss Kang입니다.” 넋을 잃고 인사를 받던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하였습니다. 왜냐고요? 그 처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입으로 커다랗게 풍선을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만 좋아하면 상대방은 당연히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먼저 자신에 대한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II. 본론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하여 1.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에서는 우리 인간이 “떠낸 반석”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커다란 바위로부터 떨어져나간 존재”라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지 못한 인간은 언젠가는 자신이 완전하게 소외된 존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우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떨어져 나온 그 바위에 빈 자리가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가기만 하면 자시 차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었을 때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친구들이 많이 있으면 외롭지 않던가요?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를 하였더니 외로움이 사라지던가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있을 곳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슬픔과 좌절 속에서 원망하고 울부짖어 가면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광야에서 헤매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지쳐있는 우리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망 없던 우리 인간들에게 2.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본문 3절 말씀처럼, “여호와가 위로하면” 광야가 에덴처럼 될 수 있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 같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던 우리의 인생이 에덴처럼 변하고 여호와의 동산처럼 바뀌게 될 때, 비로소 기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거부한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고 또한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그리고 손을 내밀어 요청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아야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3. 위로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그에게 1)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5절의 말씀처럼 구원과 심판이 분명하게 계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귀에는 세상의 소리만 들리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과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비로소 전파하실 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다가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습니다. 귀를 기울여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8절부터 30절에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셨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일부의 제자들이 그 음성을 듣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있던 무리들은 천둥소리로 듣거나 천사들의 말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위해 그 음성을 들려주셨지만, 인간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원과 심판이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구원을 성취하기로 결단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는 축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는, 2) “눈으로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 말씀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볼뿐만 아니라 아래에 있는 땅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영원토록 남게 될 것인지를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잠시 동안만 의미 있는 것이고, 결국에는 다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기록된 말씀은,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을 뜻할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인생에 반드시 찾아오는 마지막 날에 대해서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됩니다. 그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저 푸른 하늘이 어디에 있겠으며, 이 땅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즉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증거 하셨던 그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을 보게 될 때, 장차 있게 될 그 사실들을 미리 보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위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가 에덴 같이 되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 같이 되는 신비한 일들이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는, 3) “율법을 마음에 두라!”는 것입니다. 7절에서 증거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간직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엄청난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두 귀는 세상의 소리를 여전히 듣고, 두 눈은 여전히 세상의 것을 보고 있지만, 그 마음은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의 말씀처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지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마음을 가진 자들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또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소외감과 외로움으로 마치 광야를 헤매는 사람처럼 또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주저앉아 있는 소망 없는 사람처럼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반석에 다시 합쳐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떠났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의 위로가 여러분 각자에게 넘칠 것입니다. 광야와 같이 의미 없던 인생이 에덴 같이 되고, 사막과 같이 메말랐던 여러분의 삶이 여호와의 동산처럼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위로만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 그리고 창화하는 아름다운 소리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초청과 영접기도> |
Saturday, March 10, 2012
천국 복음 “여호와의 위로” (7/29/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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