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2, 2012

“예수님의 선택, 나의 선택” (7/28/2002)

본문 : 마태복음 27:11-14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I. 서론
신앙은 선택의 발자취의 결과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선택의 모델을 꼽는다면 역시 예수님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순간마다 가장 현명한 최고의 선택을 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께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계속 침묵하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더러운 인간들의 손에 붙잡히셨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형벌 중에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십자가 형이 바로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의 마지막 심문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무죄를 변명하고 변호할 수 있었지만 입을 굳게 다물어버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보통 사람들이 침묵하는 경우를 보면, 어떤 질문에 대하여 대답할 가치가 없을 때 입을 닫아버립니다. 예를 들어서, 국회에서 연설을 마친 대통령에게 어떤 국회의원이 “당신 이름이 왜 ‘부시’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마 어이가 없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도 그러한 것이었을까요?
또 다른 경우를 보면, 대답할 말이 없을 때, 즉 자신의 잘못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 변명을 할 수 없을 때 침묵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답을 한다 해도 그대로 되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알 때에도 침묵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가 그러한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선택하신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할만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요,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도 아니요,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그렇게 하신 것도 분명 아닙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고, 그러한 고난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26장을 보면,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가 칼을 꺼내어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두 영이라 함은 12개의 군단 즉 적어도 120,000명이 넘는 많은 숫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인간들의 손에 붙잡히신 것은 그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명한 주님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하나님께는 최고의 영광이 돌려졌고, 구원의 계획이 다 완성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잘 선택하여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참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침묵하셨습니까?
첫째로, 1. 성경을 이루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이 그를 따르던 제자들 또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매우 달랐던 이유는,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사셨고,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이루어졌던 “역사적 성취”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각자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개인적 성취”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신앙여정 속에서 우리들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뜻을 이루기로 선택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자신의 무죄를 변명하여 그 위기를 벗어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다면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는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겠습니까? 예수님 자신은 고난으로부터 벗어난다 하더라도, 구원을 약속하셨던 하나님 아버지를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어 버렸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른다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보다 자기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과 출세에 대한 뜻을 이루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고, 사실이 아닌 말들을 꾸며대고,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추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개인 생활 속에 성경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참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침묵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대신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셨던 예수님을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신 두 번째 이유는, 2. 죄를 대신 지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예수님을 통하여 분명하게 계시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변명하여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없으면 절대로 죄를 물을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율법사들이 예수님을 여러 가지 죄의 제목을 가지고 고소하였지만, 증인을 확보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한 마디만 말씀하시면, 그들은 결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졌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여 변명하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 연습을 하는데, 바이얼리니스트 한 사람이 계속 실수를 하였습니다. 지휘자가 그를 지적하여 꾸짖자, 그 사람은 “아, 내 바이얼린의 줄이 나빠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고 있습니다. 줄을 바꾸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지휘자가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고 합니다. “당신은 줄을 바꿔서 해결될 것 같지 않고, 당신 팔을 바꿔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고 죄가 없는데, 불쌍한 어떤 사람을 위해 자비의 마음으로 그 죄를 대신 뒤집어쓰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누명을 벗겨주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용서받은 모든 죄인들이 구원주이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연약한 믿음의 형제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는 당신에게 무릎꿇게 될 것입니다. 변명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죽음을 가져오지만,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침묵하는 일은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살려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신 세 번째 이유는, 3. 친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고, 15절에서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시고, 자신이 하신 말씀 그대로 최고의 사랑을 증거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침묵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십자가의 사건이었습니다.
자기 변명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죄’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침묵을 닮는 아름다운 침묵의 모습보다는 구차스럽고 거짓으로 가득한 변명의 모습이 더 많은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면 친구를 이용하게 되고, 친구의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으로 갚아주시겠습니까?

III. 결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칭찬 받는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자신을 변명하기보다 억울함 앞에 침묵하기를 즐거워하십시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 변명하기보다, 침묵함으로 남의 죄까지도 뒤집어쓰기를 즐거워하십시오.
나 자신을 사랑하여 내 목숨을 살리기보다 주 안에서의 형제를 사랑하여 그의 목숨을 살리기를 더 기뻐하십시오.
그렇게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귀한 것으로 채워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날마다 이루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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