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룻기 1:11-18 (11)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12)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하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I. 서론 “줄을 잘 서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실력으로 정당하게 성공해야 하겠지만, 우연 또는 행운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예를 찾는다면 아마 룻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룻은 원래 이방 여인이었는데, 그 땅으로 이주한 나오미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의 두 아들들 중 하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갔고, 마태복음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네 여인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룻이 나오미를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만약에 룻이 이스라엘 사람 나오미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만났더라도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 앞부분에 보면,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땅인 베들레헴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되는 흉년을 견딜 수 없어서, 이방 지역인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피하려고 하였던 그들에게 더 큰 고난이 임하였습니다. 이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오미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즉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 큰 며느리 이름은 ‘오르바’였고 작은 며느리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치 불행의 그림자가 나오미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땅으로 이주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나오미의 두 아들들도 후손을 두지 못한 채 죽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가문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남자가 하나도 없으니 먹고 살 일도 막막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시어머니 나오미는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남편을 잃고 아무 소망이 없게 된 두 며느리들에게 살길을 찾아 고향 집으로 떠나라고 권유합니다. 그 말을 들은 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붙들고 통곡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그 두 며느리들은 참 착한 여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간곡하게 부탁하면서 며느리들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큰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우겼고, 결국에는 나오미도 승낙을 하게 됩니다. 14절에 보면,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쉽게 말하면 “붙잡고 늘어졌다”는 말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무엇을 사 달라고 졸라대면서 어머니에게 매어 달리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룻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였을까요? 요즈음 젊은이들의 가치관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모습입니다. 나오미에게 무슨 돈이나 권세 또는 명예가 있습니까? 아니면 미래의 소망이라도 있습니까?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완전히 망한 여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녀가 13절에서 고백하듯이, 여호와로부터도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양식이 풍족하게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요즈음 말로 하면 완전히 homeless people이 된 나오미를 따라가는 것 중에서 나오미를 선택하는 일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룻과 같은 처지였다면 어느 길을 택하셨겠습니까?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 길,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오미를 따라가는 길이 최고의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 여인의 신분으로 유대인의 족보에 들어가는,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족보에 기록되는 엄청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면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룻의 평소 마음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 또는 순간적으로 감정적인 결정 또는 실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II. 본론 첫째로, 룻은 평소에 1.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더 낫게 더 높게 여기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젊음을 우상으로 여기면서 노인들을 우습게 여기고 힘과 지식으로 이겨보려는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떠나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좋아하면서 떠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니, 자기를 떠나 고향집으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권고를 듣고 큰 며느리 오르바는 마지못해 하면서 나오미를 떠나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16절에 보면, 룻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되게 시어머니를 공경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룻기 2장과 3장에서도 그 아름다운 모습이 계속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룻기 2장 11-12절에 보면, 그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나갔고, 결국 보아스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3장 10-11절에서는 보아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그 감동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룻의 공경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룻은 평소에 2. 은혜와 자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선택을 할 때 자기에게 유익이 되겠는가 아니면 해가 되겠는가를 기준으로 결정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계산이 빠르기 때문에 더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잘 따져서 선택을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룻은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마음이 상한 사람과 함께 하는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본문 13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완전히 소망을 잃어버린 여인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상한 마음을 룻이 알아보았습니다. 자기가 아니면 시어머니의 생명이 위태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큰 며느리는 떠나갔지만, 룻에게는 시어머니를 위로하고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은혜와 자비의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마음이 룻으로 하여금 나오미를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은혜와 자비가 오히려 룻에게 임하였습니다. 시편 18편 25-26절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베푼 은혜와 자비를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자비를 몇 곱절로 룻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셋째로, 룻은 평소에 3. 지혜로 판단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중대한 시기에 남들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자신의 결단에 의해 선택하고 그 책임을 스스로 지기보다는,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 길이 좋은지 나쁜지 또는 옳은지 그른지를 생각하기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합니다. 본문 14절과 15절에 보면, 큰 며느리 오르바는 자기 민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 이방신 즉 우상을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어느 신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육신을 어떻게 편안케 할 것인가, 또는 나에게 장차 어떤 물질적인 축복의 보장이 있는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룻의 선택 기준은 달랐습니다. 분별 없이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룻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지금 당장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7절의 고백을 보십시오. 룻의 신앙은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진실된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녀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우상, 생명이 없는 죽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장 13-17절이 증거하는 것처럼 놀라운 복이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문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에서 평안히 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룻과 같은 선택을 하십시오! 평소에 공경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시고, 평소에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가지시고, 평소에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올바로 선택하는 성공적인 신앙인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Monday, March 12, 2012
“룻의 선택, 나의 선택” (7/2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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