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성전건축(7)--“성소를 체험할 때마다” (3/21/2004)



본문 : 마태복음 10:5~16
(5)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1)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지난 여러 주간에 걸쳐 ‘성전 건축’이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데,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 말씀을 증거한 것처럼, 여러분이 진정한 성전을 건축하면 성소를 수시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성전에서, 공동체적으로는 가정의 성전과 교회의 성전에서 신비한 체험들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체험하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여러분 각자는 성소 체험할 때마다 ‘나로 하여금 성소의 신비를 체험케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며 또한 그 체험 자체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질문해야만 합니다. 나 혼자만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거의 3년 이상 따라다녔던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천국을 맛보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체험은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베드로의 반응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실패작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변화산의 체험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과 함께 거기에서 자기들만의 어떤 신비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데리고 다시 세상의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신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들도 성소에서 신비한 체험을 한 후에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계속 그 상태에만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면, 그러한 체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이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모든 일에 희생적이어서 온 교우들로부터 칭송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집에만 들어오면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되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주일 날 아내가 보따리를 싸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여보, 우리 식구들 모두 교회당에 가서 삽시다. 교회에서는 천국 같은데 집에만 오면 지옥 같으니, 우리 모두 천국 같은 교회에 가서 삽시다.’

I. 성소를 체험할 때마다 성전 밖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6절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성전 밖에서는 길을 잃어버린 수많은 주님의 양들이 헤매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개인이 성소에서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는 신비를 체험하고 있을 때,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친구들과 친척들 중에,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교회 안에,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아우성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16절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이리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못본척 하고 그대로 두면 곧 이리들에게 잡혀 먹히는 절박한 상태에 있습니다.
먼저 성소를 체험한 성도들이 그들을 구하러 성전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혼자서만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끝내는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1절 말씀에서 보듯이, 주님이 여러분을 그들에게로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보냄을 받는 자들에게, 성전 밖으로 나가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16절 말씀에서 두 가지를 당부하십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뱀같이 지혜로우라’

II. 성소를 체험하고 성전 밖으로 나가는 성도들은, 속으로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곧 세상에 휩쓸려버리기 때문입니다.
(1)세상 속에서 비둘기같이 순결하려면 성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수 천 년 동안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순수성을 유지한 비결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2)성전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누구든지 성소를 날마다 더 많이 더 깊게 체험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물붓듯이 부어지는 보혜사 성령은 체험 그 자체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는 체험을 하기 전에는 세상을 복음으로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약속한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던 것입니다.
(3)그리고 성전 밖으로 나갈 때마다 울타리를 보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울타리는 사탄의 공격을 받아 계속 훼손되고, 점점 더 강한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울타리는 기둥과 세마포로 되어 있는데, 기둥은 조각목 즉 울퉁불퉁한 아카시아 나무를 다듬어서 만듭니다. 삶 속에서의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향해 날마다 새롭게 결단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삶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에게 깨끗한 세마포로 비쳐질 것입니다.

III. 성소를 체험하고 성전 밖으로 나가는 성도들은, 겉으로는 뱀 같이 지혜로워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공중권세잡은 자’ 즉 마귀가 주인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은 세상의 지혜입니다.
‘뱀 같이’의 ‘같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서 ‘hos’라는 전치사인데 ‘마치--처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치 마귀가 최고의 세상지혜로 권세를 잡은 것처럼 너희도 지혜로워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소를 체험한 성도들은 그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세상 지혜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세상은 모두 악하다’ ‘무조건 세상을 버려라’라고 외칩니다. 신문도 읽지 말고 TV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문화는 무조건 모두 악하다고 합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도 거부하게 만듭니다. 돈과 명예와 학식을 우습게 여기게 합니다. 만약에 성도들이 모두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세상을 향해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산 속으로 들어가 자기들끼리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성소를 체험한 자들이 세상의 이 모든 것들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복음 증거에 이용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과의 긴밀한 체험, 성소에서의 체험에 우선순위를 두는 동시에,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뛰기를 강력히 권면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을 완성하고 성소를 체험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그러한 신비한 체험을 할 때마다, 성전 밖에 있는, 길을 잃어버린 주님의 어린 양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성전 밖으로 나가 그들의 안내자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성전 밖으로 나가실 때마다 속으로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겉으로는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여러분 삶 속에 늘 함께 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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