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6:3~10 10/21/2007
(3)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4)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미국의 광고 선전문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은 "만족시켜 줄 것이다(satisfy you)" 또는 "당신의 만족을 보증함(satisfaction guaranteed)"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선전 문구를 많이 사용할까요? 사람들에게 만족함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불평불만과 원망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상술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족함이 없다는 말은 불행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혹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만족함 없이 매일 매일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 6절에서 바울 사도는 지족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그에게 경건이 유익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인,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면 '지족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지족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는 아무리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여도 그 경건으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교만의 열매들이 열리게 되고, 겉으로만 경건을 꾸미는 외식하는 사람이 됩니다.(3-5절)
또한 지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부해지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9절) 그러한 사람은 시험과 올무와 정욕으로 인하여 침륜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지족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비참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족'이라는 말은 '자족'이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원어를 영어로 표현하면 self-satisfaction "스스로-만족한다" 또는 self-sufficiency "자체로-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가난하면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족함이 없으면 행복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지족(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첫째, "올 때와 비교해 보라."(7절)
누구든지 자신이 태어날 때와 비교해 보면 부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족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불평불만하거나 원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자신과 비교하며 사는, 늘 만족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둘째, "무엇이 더 귀중한지 따져보라."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3요소를 동양에서는 '의식주', 서양에서는 '식의주'로 꼽습니다.
"새벽 3시. 열흘 동안 먹지 못했지만 아직 살아 있다." 뉴욕타임스가 일본 기타규슈(北九州)의 자기 집에서 지난 7월 굶어 죽은 채 발견된 52세 전직 택시기사의 일기를 며칠 전에 실었습니다. 마지막 6월5일치 일기는 "25일간 아무것도 못 먹었다. 주먹밥이 먹고 싶다"였습니다.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던 그는 작년에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월 63만원씩 받다 돈이 석 달 만에 끊기자 집 근처 길가의 풀을 뜯어먹고 연명했다고 합니다.
일본 무사 사무라이들은 몇 날을 굶어도 방금 식사를 끝낸 것처럼 시늉하라고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거지들은 웬만해선 행인에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한국보다 더한 '체면' 문화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는 이유 중에 가장 비참한 죽음이 바로 '굶어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문 8절 말씀은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이 채워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족하고 감사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은 육신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육신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 말씀이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영혼에 있어서도 최소한 채워져야만 할 것들이 채워져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도로 영혼이 채워야만 될 것을 채우려면 그만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말씀과 경건의 교훈에 착념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영혼이 자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3. 셋째, "갈 때를 준비하라."
인생의 실상을 7절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할 때를 맞이합니다.
사람들은 늘 만족하지 못하고,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삿짐 싸야 될 때에는 누구나 "왜 이렇게 짐이 많은가"라고 하면서 투덜댑니다. 이사할 때에는 가진 것이 많을수록 부담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 천국으로 이사 가야 할 운명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가진 것이 많을수록 이사기기가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쌓기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직 "좀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서, 자녀들에게 더 많이 물려주고 싶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자족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족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 아직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기쁘게 천국으로 이사를 가겠습니까?
누가복은 12장 13-21절은 밭에 소출이 심히 많아진 어느 부자에 관한 주님의 비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더 많이 쌓아두기 위하여 창고를 새로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부자가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졌을까요? 그 사람이 과연 행복했을까요? 그러한 부자를 정말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가 자신에게도 떠날 날이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고 준비하는 사람이었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 인하여 유익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떠난 빈자리에 무엇이 남을까?"를 늘 마음 속에 질문하며 사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내가 쌓아둔 것으로 인하여, "나에게 욕이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존경이 돌아올 것인가?" "다툼이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평강이 임할 것인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해악을 줄 것인가 아니면 유익을 줄 것인가?" "거짓된 삶이 그들에게 드러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따라간 모습이 드러날 것인가?"
떠날 날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재물과 시간과 건강을 오늘 사용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자족하게 되고 감사와 행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자의 운명을 9-10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공을 놓친 뒤에 그 튀는 방향에 대해 불평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족할 수 있는 기회는 늘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보이십시오. 유산으로 물려주십시오.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말씀과 경건의 교훈에 있어서도 자족할 정도까지 성장하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을 떠나지 않으며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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