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야곱의 신앙 성숙” (6/13/2004)



본문 : 창세기 32:21~32
(21)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22)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23)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32)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야곱처럼 많은 변화와 역경을 겪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태어나는 때부터 순탄치 못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그의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다투었고, 태어날 때에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옴으로써 간발의 차이로 차남이 되었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억울하였던지, 그는 기회를 노리다가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었고,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형 에서에게 돌아갈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에서가 크게 화를 내며 죽이려 하자, 어머니는 야곱을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 도망치게 하였고, 야곱은 그곳에서 외삼촌의 딸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들의 두 여종인 빌하와 실바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며, 11명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에서의 화가 풀리는 대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던 어머니의 약속은 잊혀졌고, 외삼촌 라반 마저도 약속을 어기는 것을 보면서, 야곱은 외삼촌의 재산을 교묘한 방법으로 탈취하여 도망치듯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얍복강에서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야곱의 인생 전체를 살펴보면, 인간이 어떻게 성숙함에 이르게 되는지를 세 가지 단계로 요약할 수 있게 됩니다.

첫째는, 의존하는 단계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생존하는 본능을 갖고 태어납니다. 에서와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유능한 사냥꾼이었던 에서를 좋아하였고, 야곱은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아이로 자라갔으며 나중에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친 후에는 외삼촌 라반에게 의존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야곱의 자세는 한 마디로 ‘의존하여 이루어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그리고 외삼촌에게 의존하였더니, 그의 인생이 평탄하였습니까? 오히려 문제만 계속 발생하였지요. 만약에 야곱이 평생토록 계속 남에게 의존하며 살았다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신앙을 처음 갖게 될 때에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무도 혼자서 스스로 믿음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신앙적으로 의존하면서 ‘상대방의 믿음이 내 믿음이다'라고 착각하면 큰 문제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모님들의 신앙을 자랑하면서, 마치 부모의 신앙이 자기 신앙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가 믿음이 좋으므로 그 공로에 의해 자신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큰 교회에 속해 있음을 자랑하면서 마치 자신의 믿음도 그 교회만큼이나 크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게 의존적인 태도를 갖는 한, 본인의 신앙은 결코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의존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거부하셨고, 항상 개인적인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둘째는 분리되는 단계입니다.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서, 의존하던 대상과 갈등하게 되고, 결국에는 분리되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단계입니다.
야곱의 삶이 그러하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형제간에 갈등이 심화되었고, 외삼촌과 조카들로부터는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의존하던 그들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었고, 마음의 고통과 육신적인 고달픔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신앙인을 내 신앙의 모델로, 나의 신앙적 영웅으로 삼아 따라가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의존하던 대상들의 불완전함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과 내가 똑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들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그 과정에서 신앙적인 고뇌와 아픔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는, 결국 홀로 남게 된 야곱의 고독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뒤에는 원수 관계가 된 외삼촌 라반이 있고, 앞에는 자신을 죽이려 하였던 형 에서가 있습니다. 야곱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로 그 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씨름하였고, 결국 야곱은 그 위기 상황에서 승리로 인생을 전환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지막 단계인, 스스로 싸워 승리하는 단계를 발견합니다.
본문 28절의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라는 말은, 야곱이 그의 인생 여정 속에서 인간들에게 대항하였고 하나님께 대항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겼다’는 말은 ‘극복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이 두 가지 대항하는 관계 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관계를 극복하면 성숙한 사람이 되고, 극복하지 못하면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들과 겨룸으로부터 극복한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의존감 또는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겨룸으로부터 극복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의 그 밤에 두 가지 모두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얍복강 이편까지의 인생과 저편에서의 새로운 인생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과 7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에 비유하고, 마태복음 21잘 44절에서는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모퉁이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각 사람이 스스로 싸워서 극복할 때 비로소 성숙된 그리고 변화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부은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야곱에게서 교훈을 받으십시오.
첫째로,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의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십시오!
둘째로 여러분의 신앙 성숙에 무엇이 방해물이고 무엇이 도움인지 분별하십시오!
셋째로 이길 때까지, 극복하여 성숙할 때까지, 여러분이 당하는 그 문제와 씨름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반드시 ‘이스라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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