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11:1~10
(1)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하매 (6)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8)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10)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 부활 1주일 전의 주일 날을 종려주일(Palm Sunday) 또는 수난주일(Passion Sunday)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여 AD 4세기 이후 이날, 즉 수난주간의 첫날에 축하행렬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참가자들은 종려나무와 올리브 등 푸른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13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다른 말로 대추야자나무인데, 시나이 반도의 오아시스 지역에서 무성하게 자랍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초막절 축하에 사용되었고, 마카비의 승리와 성전 회복을 축하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I. 나귀 새끼 타신 예수
이러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군중이 환영할 때, 예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에 공개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신의 전통으로 보면, 승리의 개선장군은 융단이 깔린 길을 따라서 말을 타고 성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으며, 전쟁을 하다가 중단하고 평화조약을 맺게 될 때에는 양편의 대장이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타고 성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군중들이 예수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면, 승리의 개선장군이 걸어가는 길에 융단을 까는 것처럼, 자신들의 옷을 벗어서 길에 깔았고,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승리의 개선장군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개적인 예루살렘 입성은 말이 아니라 나귀였고, 나귀 중에서도 어린 새끼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나귀 새끼를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의 의도와 군중의 바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II. 그 때 군중은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아람어인데,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소리쳤던 것일까요?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에 들어간 후 며칠 되지 않아서 예수님은 체포되었고, 산헤드린 공회의 고소와 빌라도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환영하였던 바로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소리쳤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배반하거나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므로, 군중이 소리쳤던 ‘호산나’의 진정한 의미는, ‘메시야가, 이방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기적에 의해’ 구원해 달라는 외침이었음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군중의 ‘호산나’ 외침이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며 부르짖다가, 본인이 헌신해야 될 때 또는 어떤 세상적인 고난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는 멀리 도망가든지, 거룩한 척 꾸미고 살든지 또는,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호산나를 외쳐야 합니까? 아니면 외치지 않아도 됩니까? 당연히, 호산나를 외쳐야 합니다.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아야만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쉬지 않고 계속해서 호산나를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III.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호산나를 외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권세자 앞에서도 호산나를 외쳐야 합니다. 권세자의 선동에 휩쓸리거나 그들의 위협이 무서워서 굴복하는 군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권세자 앞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호산나를 외칠 때 진정한 의미의 호산나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 밑에서도 호산나를 외쳐야 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그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보면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호산나를 외쳤을 것입니다.
셋째는, 빈 무덤을 보면서도 호산나를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을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던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고 두려워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속이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빈 무덤을 보면서 오히려 호산나를 외쳤을 것입니다.
공산권에서 몰래 예배를 드리던 어느 지하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총을 든 군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 총부리를 겨누며 외쳤습니다. ‘죽고싶지 않은 사람은 지금 이 자리를 떠나시오. 마지막 기회를 주겠습니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은 실수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하면서 떠났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갑자기 총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면서, ‘형제들이여,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도 부활의 주님께 예배들 드리고 싶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나 공산당 첩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습니다.’
호산나의 외침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호산나를 외치는 이 주일에 당신은 어떤 호산나를 외치시겠습니까?
군중 속에서 외치다 도망가 버리는 그러한 호산나를 외치겠습니까? 아니면 세상 권세자 앞에서도, 고난의 십자가 밑에서도, 빈 무덤을 보면서도 호산나를 외치는 성도가 되겠습니까?
고난주간 동안, 십자가를 지고 가는, 무덤에 묻히신 주님께 ‘호산나’를 외치는 여러분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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