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4/11/2004)



본문 : 요한복음 20:19~23
(19)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3일째 되는 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토요일에 지키던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 즉 '주님의 날'로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I. 제자들에게 다시 오신 부활의 주님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제자들은 오늘 본문 19절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놀라운 기적과 함께 나타날 메시야를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들은 크게 실망하고 좌절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다시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믿음이 과연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렇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주님이 곧바로 하늘 나라로 가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데에는 특별한 의도와 목적이 있었으리라고 집작할 수 있습니다.

II. 부활의 주님의 소원과 약속 - ‘평강이 있기를’
본문 19절과 21절에서 보면, 부활의 주님이 첫 번째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주님의 제자들을 향한 소원이었고 반드시 이루어 줄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증거는 ‘평강’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에서는 여인들에게 ‘평안하뇨?’라고 물으셨고, 요한복음 20장 26절과 누가복음 24장 36절에서도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헬라어 원어에서는 ‘함께 있다’라는 말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이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평화’ 또는 ‘평안’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평안은 본문 22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성령을 받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대개 과거에 대한 후회와 현재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갈등과 투쟁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마음 속에서, 가정 안에서, 집단 또는 공동체 안에 참된 평강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아직도 마음 속에 평강이 없고 가정과 공동체 안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고 무덤에 묻혀있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면, 그에게는 반드시 평강이 있어야만 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소원이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 만난 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평안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들의 바램들은 불만족스러웠고, 그들이 처한 환경은 계속되는 더 큰 고난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겠다는 재림의 약속은 아무리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똑같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우리도 여전히 평안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강을 이루었습니다. 23절 말씀처럼, 세상의 죄를 사하는 일을 위하여 몸 던져 복음 사역에 임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는 초월적 평강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오직 보혜사 성령을 받음으로써만 가능하였습니다! 육체의 일은 투쟁을 일으키고, 오직 성령의 열매만이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갈5:19-21“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III.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보혜사 성령 받음으로써 성취하였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하셔도 인간의 믿음이 없으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보혜사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그들은 받기까지 기다렸습니다. 막연하게 기다린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실망하여 떠나버린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겠습니까?
셋째로, 그들은 받아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목적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한 것만 바라고 또 그 유익을 얻으면 그것으로 끝내버리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만 유익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곧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하신 주님을 환영하면서, 여러분 각자의 심령 속에 오늘날 평강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평강이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지 못하여, 부활신앙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읍시다. 사모하고 기다립시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주님을 위해 사용합시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참 평강이 여러분 마음 속에, 가정에, 우리 교회에 그리고 여러분의 일터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에게 오셔서 ‘평안하뇨?’ 물어보시면, ‘나의 과거가 후회스럽고, 나의 현실이 두려우며,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안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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