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7:9~23 8/12/2007
(9)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14)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23)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변화산에 올라갔던 제자들은 천국을 눈으로 보는 굉장한 체험을 하고 산을 내려왔지만 여전히 근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왜 그랬을까요? 혹시 오늘날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한 후에 여전히 근심에 싸여 있지는 않습니까?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을 보는,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신비한 체험을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면서 자기 얼굴을 가립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관대?"라고 하면서 변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나약한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근심하는 이유를 찾고 교훈을 얻게 되기를 원하는데, 세 가지 질문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 첫째는, "엘리야가 왜 오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의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오리라"는 말씀은 말라기서 4장 5-6절 말씀인데, 제자들은 그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실망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실제 상황은, "이미 왔지만, 너희들이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화상(畵商) 알렉산더 레이드 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2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림도 아닌 것'을 들고 왔다고 아들을 몹시 꾸짖었습니다. 혼이 난 레이드는 자신의 초상화와 사과 바구니를 그린 정물화를 각 5파운드(약 8700원)에 프랑스인 화상에게 팔아넘겼습니다.
푼돈에 팔린 그림들은 1886~87년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고흐 형제와 몇 달 간 함께 살았던 레이드에게 고흐가 준 선물이었습니다. 특히 사과 바구니 정물화는, 사과를 그리고 싶었지만 수중에 돈이 없는 고흐를 위해 대신 사과를 사준 레이드에게 고흐가 그려준 그림이었습니다.
훗날 레이드는 "고흐가 대가가 될 줄 미처 몰랐다"며 그림을 팔아치운 것을 탄식했습니다. 고흐의 정물화 '해바라기'가 1987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일본 손해보험사에 약 400억원에 팔린 적이 있으니, 적어도 미국 돈으로 4천만불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그림을 9불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또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응답하셨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계속 실망만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또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보는 지혜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둘째는,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이 질문하는 의도는 "주님이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책임을 돌리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판단에 의하면, 실제 상황은 "너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암 환자는 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암에 대한 공포감이나 공포가 불러오는 면역체계 파괴로 인해 사망하게 되는 사실을 중국의 저명한 면역학 전문가인 황 박사가 발견하였습니다. 암은 "진화의 피할 수 없는 단계"로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을 수년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 빠르게 자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암 발생률은 나이가 많을수록 높아지지만, 노인들이 종양을 의식하지 않음으로 해서 공포감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률이 오히려 적은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 안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포감도 함께 키워지고 그로 인해 면역체계가 손상을 받게 되어 결국 공포심으로 인하여 사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믿음이 없을 때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굳은 믿음과 신앙으로 성숙됨으로써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주님이 왜 죽으셔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제자들의 의도는 "우리의 소원은 아직 이루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생각에 있습니다. 만족하지 못하면 불평하게 되어 있고 심지어 원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는 실제 지유는 "내가 죽어야 너희를 영원히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고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감사하지 못하면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리고 심지어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젊은이 둘이서 통나무 다리 위로 깊은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건너가는 도중에 한 청년이 다리 밑을 보니까 강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꾸 내려다보던 그 청년이,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것을 본 다른 친구가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위를 봐! 하늘을 봐! 그리고 앞만 보고 걸어!" 위를 바라보는 믿음이 없으면 낙심하고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흐르는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역경과 고난의 돌을 치워버리면 우리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를 바라보며 고난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변화산을 체험한 제자들이 왜 근심했습니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천국 사다리 잊어버리고 땅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변화산을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앞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천국사다리 바라봄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시다.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리고 고난을 오히려 승리와 성공의 디딤돌로 이용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리하여 날마다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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