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6:24~17:8 8/5/2007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네가 믿으면 보리라"는 것입니다. 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까? 믿음을 가진 성도들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습성을 요한복음 4장 48절에서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요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현대그룹의 전 회장인 정주영씨가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해보기나 했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여 믿지 못하겠다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믿어보기나 했어?"라고 질문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요한복은 9장 39절은 주님의 뜻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데<"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오늘 본문 27-28절에서 주님은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였고,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체험하고 증언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말씀을 통하여 간접경험을 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눈으로 확인하게 된 후에는 예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실존을 믿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변화산'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세 가지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첫째로, "그 나라는 있다"는 진리입니다.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가 '변화산'에서 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말씀에 의하면 그 나라는 예수의 왕권이 성취된 곳 즉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실체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이 세상과는 완전하게 격리된 별개의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먼 미래에 이루어지게 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곳이 아니라, 영원토록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다만 지금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 29절에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으로 그 나라를 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그 나라는 빛과 생명의 세계이다"라는 진리입니다.
2절에 의하면 그 나라는 '빛'의 세계입니다. 26절에 의하면 그 나라는 '생명'의 세계입니다. 언젠가는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던 세 사람들 중에 베드로가 참지 못하고 외쳤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그 모습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외쳤겠습니까? 여러분도 그 나라를 사모하면서 기다리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그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 있다"는 진리입니다.
1절에서 "엿새 후"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볼 자들도 있다"(28절)고 말씀한 시점으로부터 6일째 되는 날에 이 사건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있던 날 주님은 24절에서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24절 말씀은 그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조건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변화산에서의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임한 사건이었습니다. 역으로, 그 사건은 땅으로부터 하늘로 가는 길 즉 '천국 사다리'가 분명하게 성립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바로 천국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사다리를 올라가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따라가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5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귀로만 들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닮아가라!",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거나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거나 또는 예수가 아닌 세상이나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그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서부의 대평원을 거침없이 누비던 때, '죽음의 계곡'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용감한 개척자들, 탐험가들이 말을 달려 이 계곡으로 가기만 하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용감하고 지혜로운 한 젊은이가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인디언들은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어느 화창한 여름날 계곡을 향하여 말을 달렸습니다.
'죽음의 계곡'근처까지 왔으나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젊은이가 계곡의 굽이까지 왔을 때 계곡 아래 강으로 통하는 두 갈래의 길이 나왔습니다. 한 길은 사람이 지나기에 편한 길이고 다른 한 길은 나무가시와 넝쿨로 무성하게 얽혀진 길이었습니다. 이 젊은 탐험가의 첫 번째 유혹은 넓고 쉬운 통로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심성 있는 젊은이는 나뭇가지를 꺾어 넓은 길 끝 강을 만나는 지점에 던져보았다. 놀랍고 두려운 사실이 일어났습니다. 나뭇가지가 금방 땅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모래펄이었습니다.
마침내 젊은이는 많은 사람이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 넓은 길은 보기에는 쉽지만 죽음으로 직통하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칼을 꺼내어 좁은 길을 막고 있는 가시넝쿨을 헤치고 강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길의 마지막 끝에 통나무가 모래펄 위에 놓여진 것을 발견하고 이 통나무를 타고 계곡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고, 이제는 아무도 그 계곡에서 죽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렵고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며 고난길이 되기도 하는 '예수를 따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를 거부하는 길'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대가 결정을 내리면 그 다음엔 결정이 돌아와 그대를 만들 것이오."라는 말이 있듯이, 여러분이 천국사다리를 선택하면 그때부터 천국사다리가 여러분 앞에 보이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그 길이 여러분 앞에 분명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체험이 당신의 체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사다리가 당신 앞에도 놓여 있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그 사다리를 한 계단씩 올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