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메시야가 왔습니까?” (3/28/2004)



본문 : 이사야 53:1~9
(1)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견딜 수 없는 심한 고난을 당할 때,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신비한 방법으로 임재하여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의 도래를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참으로 많은 고난을 오랜 세월동안 당하였습니까? 강력한 이방 나라들에 둘러싸여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고난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초월적으로 임재하여 자신들을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를 보내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인데, 신약시대에는 똑같은 의미의 헬라어 단어인 ‘그리스도’라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오늘 본문에 보면,
I. 이스라엘이 기다린 메시야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이방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굉장한 능력의 권세자를 기다렸는데, 본문 2절에서는 ‘낮고 낮은 자’로 임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민족의 환영을 받는 영웅적인 사람을 원하였는데, 본문 3절에 의하면 그는 민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멸시당하기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와서 이방나라들을 쳐부수고 그들을 억압하기를 원하였지만, 본문 4절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 나라의 권세자인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죄인으로 고소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에 대해 증거하는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죽였으며, 그들은 지금도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였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십자가 위에서 무참히 학살당한 불쌍한 인간이었습니까?

이사야서는 예수의 탄생보다 약 500년 전에 기록된 문서입니다. 그 이사야서가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에 대해 자세히 증거하고 있는데,
II. 만약에 예수가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루셨다면 그가 바로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본문 5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최고의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징계를 당함으로써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으로 맞음으로써 잘못되었던 것들이 고쳐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본문 6절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무리의 죄악을 대신 당당하심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만 아니라 천국을 영원토록 소유하는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는데, 예수께서 그 일을 다 완성하였습니다.
본문 7절은 그 십자가의 고난이 자발적인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을 당하면서도 아무 변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Passion'이라는 영화가 이 예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께서 고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변호했다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겠습니까?
본문 9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는 두 강도들과 함께 사형을 당하였고,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 유대인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죄인들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야말로 모든 예언을 성취한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III.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며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와 함께 낮아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천민 신분인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고백하였지만 그 처녀는 왕자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각종 보물과 아름다운 옷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다시 찾아갔지만, 처녀는 여전히 거절하였습니다. 고민에 빠져 방황하던 왕자가 천민들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 마지막으로 처녀를 찾아갔는데, 그 때 비로소 왕자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한없이 낮아지셨는데, 우리가 오히려 예수의 이름으로 높아진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2)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고난을 함께 당해야하지 않을까요?
스웨덴에 파견된 어떤 미국 병사가 시내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미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아무 말이 없던 그 남자가 버스에서 내리자, 뒤에 있던 사람이 그러더랍니다. ‘저 분이 우리 나라의 국왕이십니다. 우리는 늘 국왕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교만해져서,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를 못본척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3)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와 함께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텍사스 주에 있는 어느 신학교에서 강의시간이 되었는데, 수업에 들어온 한 여학생이 무릎에 성경을 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담배 재가 성경에 떨어지는데도 그 여학생은 여전히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교수는 있는 힘을 다해 참으면서 속으로 ‘아, 저 학생은 정말로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음 속에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네가 주님보다 뛰어나냐? 주님은 죄리들과 세인들을 사랑하셨는데, 너는 저 학생을 사랑할 수 없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는데, 내가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미워한다면,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 가지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닮아야 할 덕목들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혜택만 받아 누리다가, 주님이 필요로 하실 때에는 떠나버리는 얌체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노력합니까?
아니면 세상이 우러러보는 메시야처럼 살고자 하십니까?
생활 속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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