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8:5~13 10/29/2006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9)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깨끗함"은 하나님의 요구사항입니다. <레위기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찌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깨끗하다"의 반대는 "더럽다"인데, 함께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섞여있거나 함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깨끗함의 본보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일서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주님의 소망은 그리스도인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41,42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곧 문둥병이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그러므로 '깨끗해짐'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사야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마태복음 5장 8절은 깨끗한 성도가 받을 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깨끗해짐'의 세 번째 성숙 단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첫째는, 율법으로 깨끗해지려고 하는 단계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표면적으로, 육체적으로 깨끗해지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 등은 깨끗해지기 위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끝난다면 결국에는 외식하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마음을 깨끗케 하려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뜻을 오해하는 것입니다.<잠언30: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미국 테네시주의 팁톤빌 경찰당국은 이 마을 소방서장 제임스 블랙번과 블랙번의 손자 등 의용소방대원 3명을 지난 2004년부터 마을에 잇따라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하여 수감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조직을 결성했다는 것 이외에 구체적인 방화동기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현지 경찰서장은 1년 전부터 누구의 소행인지 확신하고 조사를 벌여왔다고 합니다. 이 연쇄 방화로 인해 팁톤빌에선 빅토리아식 가옥이 불타는 등 적잖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람의 겉과 속이 어떻게 이토록 다를 수 있겠습니까?
율법을 아무리 열심히 지킨다 해도, 마음 속까지 깨끗케 하지는 못합니다. <누가복음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잠언20: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
율법은 오직 자신의 더러움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2. 둘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지는 단계입니다.
마음으로(정신적으로) 깨끗해짐으로써 외면적인 계명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단계입니다. <마태복음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한일서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여러분은 이미 깨끗해진 그리스도인이 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나 혼자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면 다 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약한 자들을 실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는,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깨끗함의 단계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이 있다면, 비록 나는 깨끗하고 그 형제의 오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의 덕목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42절에서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깨끗케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디도서 2장 14절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도 증거하는 것처럼, 나 자신만의 깨끗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약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5월에 뉴욕타임스에서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만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벌어진 논쟁을 기사화 시킨 일이 있습니다.
해발 8000m 등산길인 에베레스트(낮은 기온, 산소 부족 등 악조건 속에서 남을 도우려다 자신의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소위 '죽음의 영역(death zone)')에서 뉴질랜드.호주.영국.미국의 4개국 산악인들의 상반된 경험이 알려지면서 이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의 마크 잉글리스(47)는 두 다리 없는 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난 후 인터뷰에서 "등산 때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해발 8500m 부근 바위 아래에서 산소 부족으로 숨져가는 영국인 데이비드 샤프(34)를 발견했으나 구조하지 않고 등산을 계속해 정상을 밟았습니다. 그는 "그 정도 높은 곳에선 남의 목숨은 고사하고 내 목숨을 건사하는 것조차 매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그날 아침 정상을 오르내린 40여 명 모두 샤프 곁을 그냥 지나쳤다나고 합니다. 샤프는 결국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인 댄 마쥐르가 호주 산악인 링컨 홀(50)을 살린 것입니다. 홀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8700m 쯤에서 갑자기 쓰러져 산에 남겨졌습니다.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정상으로 향하던 길에 홀을 발견한 마쥐르는 그의 생명이 붙어있음을 직감하고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구조팀과 함께 홀을 산 아래쪽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옮겨 놓았고, 홀은 구조 하루만에 혼자 걸어서 내려올 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하였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영국인 샤프를 누군가 도왔더라면 살 수 있었지 않을까?"라고 질문하면서 기사를 끝냈습니다. 나 혼자만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외면한다면 과연 그 일이 정당할까요?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깨끗한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깨끗해지고자 하십니까? 나의 깨끗함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주님을 슬프게 하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맙시다. 깨끗해지고자 하는 나의 열심으로 인하여, 아직 신앙이 어린 믿음의 형제들이 오히려 넘어지고 범죄한다면, 주님은 나의 깨끗함을 결코 칭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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