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16, 2012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2/5/2006)



본문 : 요한일서 4:7~12     2/5/2006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둘 다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전자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기 전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 의하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곧 사랑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청년이 하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20과 30분을 투자하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청년을 데리고 가게로 가서 쌀 한 포대와 반찬거리를 $20어치를 사서 어깨에 메고 따라오게 하였습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청년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간신히 목사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다 쓰러져가는 어느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 그리고 일하다 다친 어머니와 어린 아이들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였습니다. 청년은 집을 나서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 이제는 하나님을 알 것 같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은 많아진 것 같은데, 세상에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머리만 커진 교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만 커지다 보니, ‘네가 크냐? 내가 크냐?’ 하면서 서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였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9장 34절에 보면, 심지어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숨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성령 받은 사도들이 또한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하나님을 아십니까? 알기를 원하십니까? 알기 위하여 실천하겠습니까?

2.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헬라어 원어로 ‘Agape'입니다.
‘Agape'는 인간적인 사랑 또는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 상대방에게 낮춰주는 사랑, 내어주는(희생하는) 사랑, 그리고 끝까지 함께 가는 사랑입니다.
‘Agape'는 혼자서는 실천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Agape'를 서로 실천하도록 그리스도인 공동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그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존재해야 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7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Agape’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방법으로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Agape'를 이해할 수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은 동정이고, 그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진정한 사랑은 세상의 방법이나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하시게 해야만 합니다!(9절)
그래야 그 사랑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이루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은,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므로 이것을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과 행위가 되어야합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말과 행위를 꾸며서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노르웨이 속담에 ‘가난과 연애는 쉽게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반드시 그 결과가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로, 생명의 열매인지 확인해야만 합니다!(9절)
진정한 사랑으로 하는 것에는 반드시 생명의 열매가 열립니다. 만약에 결과적으로 죽음의 열매가 맺혔다면, 거기에 사랑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지하철 역무원이 직업인 어떤 분이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진정한 신앙이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자신이 근무하는 지하철 역에서 한 맹인 학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 밀리다가 간신히 출구를 찾아 올라가면서 장갑도 끼지 못한 손으로 쇠로 된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역무원은 다음 날부터 맹인 학생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그 손잡이를 자신의 손으로 따뜻하게 만들어 놓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며칠 지난 후에 그 맹인 학생은 갑자기 그 자리에 서서 주위를 돌아보면서 소리쳤습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군요. 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사랑은 느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바라보던 그 역무원의 마음 속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사랑의 열매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열매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읍시다.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시고 겸손하시며 자신을 희생하고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신 주님을 본받읍시다.
그리고 그 주님의 분부대로 서로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열매로 나타나는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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