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4:14-21
(14)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1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17)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어떤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I. 서론
초대교회 시대에 금욕과
고행을 통해 주님을 따르고자 했던 인물들 중에 시므온(St. Simeo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본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었고, 마음이 청결해지기 위하여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에는 더 청결해지기 위해
은둔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기도를 요청하며 몰려들자, 자신의 수행이 그들에게서 방해받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세운 후 그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기둥 성자’(Saint on the Pole)라고
불렀습니다.
기둥 위에서의 생활은 37년 간 계속되었고, 기둥의 높이는 점차로 높아져 3, 6, 11, 20 미터의 높이로
발전해갔습니다. 기둥 꼭대기의 공간은 지름이 3피트 정도였는데,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사순절기간동안 내내 금식하고 평상시에는
오직 일요일에만 식사를 했습니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목에는 쇠사슬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하루종일 서서 기도했으며
구경꾼들은 시메온이 기둥 꼭대기에서 하나님께 절하는 것을 1,244번까지 세었다고 합니다. 시므온을 따르는 사람들은 1,000명이 넘었는데, 그
기둥 옆에 거주하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스승에게 음식을 공급했고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도 기둥 위에서 받았습니다.
때론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때론 폭풍우를 맞으며 기둥 위에서 수도하였고, 오직 하늘의 상급을 기대하며 고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둘러선 구경꾼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루에 두 번 했으며 병자를 낫게 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이 ‘기둥 성자’ 정말로 얼마나 굉장한
사람이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아마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시므온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 자였을까요?
II. 본론
1. 수직과 수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 즉 수직적인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후반부는 인간과 인간 사이 즉 수평적인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들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가 동시에 만족될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만족시킨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시므온이라는 ‘기둥 성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절반 밖에 이루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축복의 관문
수직적으로 이룬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수평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수직적으로 받는 하나님의 복이 수평적인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출애굽기 20장 12절에 있는
제5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수직의 관계를 아무리 잘 이루어도
실제적인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수평의 관계를 아무리 잘 이루어도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는 이
점에서 볼 때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기는 고사하고, 자식들이 부모를 멸시하고 천대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에는 ‘육신의 부모’와 ‘신앙의 부모’가 있습니다. 제5계명에서 말씀하는 ‘부모’는 이 두 가지를 다 포함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신앙의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는 이 ‘신앙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면 그 부모가 누린 복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처럼, 신앙의 부모를 잘 공경할 때 그
부모가 누린 하나님으로부터의 복이 그 자녀에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제5계명을 지키려면
첫째로, 1) 아비를
만나야합니다. 아비가 없으면 어떻게 그를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5계명을 지키려는 자는 먼저 아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아비는 이미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나를 낳아주신 분 또는 나를 키워주신 분, 그래서 나에게 육신의 생명이 있게 하신 분, 그 분이 바로
육신의 아비입니다. 그 분은 이미 만났으니, 에베소서 6장 1절로 2절의 말씀대로 그 분을 공경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5절에서
말씀하는 ‘신앙의 아비’는 우리가 반드시 찾아서 만나야만 되는 존재입니다. 헬라어로 이 ‘스승’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를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 아이를 잠시동안 지식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킬 사람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라는 말은 그 아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성숙시켜서 또 다른 어른을 만들기까지 계속해서 필요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어떤 때에는 자비와 사랑으로, 어떤 때에는
매를 들고 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15절에서 사도 바울의 증거에 의하면, 세상에 스승은 많이
있지만, 부모는 많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0,000분의 1이 될 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아비’를 만나기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아비’를 만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크게 받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의 아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의미를 깨닫고 인정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갑부 록펠러의 어머니는 이 비결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알고
잘 섬겨라.”라고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무엇이 잘나서가 아니라,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에게 많은 유산을 주어서가 아니라, 다만
나에게 생명을 전해주신 분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를 공경할 때 복을 얻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도 그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해 주는 분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모두 ‘신앙의 아비'를 만나시기를, 그리고
그를 공경하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을 다 받아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2) 본받아야합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내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비를 닮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닮지 않으면 “어디에서 주워 온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지 않습니까? 디모데는 바울을 ‘신앙의 아비’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를 닮아가고자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인정함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목숨을 바쳤듯이, 디모데는 바울을 닮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성화 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8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스스로 교만하면 ‘신앙의 아비’를 닮아갈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목사님에게서 본받을 것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신앙적으로 성숙되겠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육신의 부모에게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처럼, 신앙의 부모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장점을 닮아가야 되는 것처럼, 신앙의 부모로부터도 장점만 닮아 가면 됩니다. 겸손한 자는 심지어 어린
아이로부터도 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3) 능력을 사용해야합니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실상이 아닌 허상 속에서 헤매는 사람입니다. 본문 20절에서 ‘능력’이라는 말은
“현재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라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능력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능력이 없다고 핑계를 대며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육신의 아비’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처럼, 나의 ‘신앙의 아비’를 통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있을 때, 하나님의 복 주심이 나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아비’를 통해 이 능력을
공급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능력을 입으로만 하지말고, 지혜와 지식과 영적 은사를 다 동원하여 잘 계획하고 열심히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육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십시오. 그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부모를 발견하고 본받으며 그를 통해 능력을 받아 사용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그에 따른 큰 복이 여러분
앞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발견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제5계명을 잘 지키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복이
넘치게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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