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58:6-14
(6)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I. 서론
산 속에 살고 있던
뱀 한 마리가 어느 날 싸움이 붙었습니다. 꼬리가 먼저 불평불만을 하였습니다. “얘, 머리야, 너는 항상 앞을 보고 다니니 얼마나 좋으냐? 나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네가 가는 대로 따라가야 되니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 줄 아니? 이제는 내가 앞으로 갈 터이니 너는 나를
따라와라.” 머리는 머리대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아니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지금까지 두 눈으로 열심히 잘 살펴보면서 다닌 덕분에 몸통과
꼬리가 다 무사히 지내왔는데, 오히려 불평불만을 하다니? 눈이 없는 네가 어떻게 앞장을 설 수 있다는 말이야? 안 돼! 내가 먼저 가야
돼!”
머리와 꼬리가 서로 싸우다가 결국에는 머리가 양보했습니다. 꼬리가 앞장을 서고 머리가 따라갔습니다. 평탄한 길로 갈 때에는
그런 대로 괜찮았지만, 산 속으로 들어서게 되자 금방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뱀은 가시 넝쿨에 몸이 상하고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꼬리가 머리에게 말하였습니다. “얘, 머리야, 안되겠다. 역시 네가 앞장을 서고 내가 네 뒤를 따라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었구나. 이제부터 나는 무조건 너를 따라가겠다.” 그러나 그 뱀은 이미 너무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II. 본론
모든 일에는 1. 목적과 수단이 있게 마련입니다. 수단이라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단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반면, 목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목적을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수단에만 관심을 두게 되며, 나중에는 아예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의 문제도 그러한 범주(category)에 속합니다.
히브리어로 ‘안식일’은 “일곱 번째 날”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는, 6일동안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하나님께서 제7일에 휴식을
취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목적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었고, 제7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목적 즉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상의
문제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실수는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날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 날을 지키는 방법을 가지고 논쟁하다가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2장 23절부터 28절에서 그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해 주셨던 것입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해치는 것들로부터, 영혼의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감을 맛보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 후 첫 날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약속의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2. 제4계명이 바로 이 “안식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로 11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에만 골몰하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한 규례들을 만들었으며,
이것을 자손들에게 전해주어 억지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금식을 해야 했고 고의적으로 몸을 학대하고 고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서 58장 말씀에 의하면, 안식일의 목적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해방과 자유 그리고 풍성함과 기쁨을
맛보는 날인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실수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3. 21세기의 안식일에도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살펴봄으로써 진정한 안식일의 목적을 성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오늘날의 안식일은
1) 스스로 쉬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이 스스로 만든 ‘공휴일(vacation)’처럼 생각하면서 아무 의미 없이
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은 분명히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됩니다. 인간이 스스로 쉬는 날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휴식에 동참하는 날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왜 쉬셨을까? 우리들에게 왜 쉬라고 하시는 것일까?”를 질문해 보아야만
합니다.
본문 6절에 보면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인간을 결박하고 있는 것들을 풀어주고, 인간의 어깨에 메워진 멍에를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일”이 바로 안식일에 해야 될 일입니다. 6일 동안 세상에서 일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결박을 당하고 멍에를 메고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7일 하루만큼은 이 모든 것에서 풀려나고 해방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인간들이 행할 때 하나님께서 쉬실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쉴 수 있게 됩니다. 안식일은 6일
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집에서 낮잠을 자고 시간을 허비하는 그러한 날이 결코 아닙니다. 안식일에 행할 일들을 준비하기 위해 6일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안식일에 마땅히 행해야 할 생명을 살리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날의 안식일은 2) 스스로
즐기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문 13절에 있는 것처럼, 안식일은 즐기는 날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스스로 즐기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끼리 또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주일 날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즐기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즐겁게 노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인간의 안식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일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즐겁게 여흥을 즐기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일에 동참하여 함께 즐기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즐거워하십니까?
본문 7절에 있는 말씀처럼, 배고픈 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자들과 물질을 나누어 쓰는 것을 즐거워하십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동안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제7일에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모자라는 자들과 함께 그 풍성함을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물질이 풍성한 자는 물질로, 지식이 풍성한 자는 지식으로, 영적인 은사가 많은 자는 영적인 일로 나누는 일을 할 때, 그것이 참된
안식일이 됩니다.
셋째로, 오늘날의 안식일은 3) 스스로 존귀하게 되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존귀하게 되어서,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우습게 여기고 멸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까지 그러한 모습들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존귀하게 되는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면 결코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본문 10절에서 굶주린 자들과 마음을 함께 하고 괴로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기까지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들도 스스로를 낮추고 형제들을 높이며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로 겸손히
순종하며 들어와야만 안식일을 올바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식일에 스스로 높아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안식일의 의미를 잘 깨달아서, 인간이 기뻐하는 안식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안식일이 되게 합시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본문 8절로 9절에 있는 말씀처럼 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문 10절부터 12절에 있는 말씀처럼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변치 않고 영원합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참된 안식일을 지켜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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