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21:10~22:2 1/23/2005
(10)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 오겠느냐 하니라
(1)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미국의 크리스천 체육인협회(Fellowship of Christian Athletes)의 회장을 지낸 Jefferis는 미국 전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달변가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Neal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그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믿음이 좋았으나, 아주 심한 말더듬이였다고 합니다. 한 번은 전국에서 회원들이 모이는 총회가 있었는데, Neal이 신앙 간증자로 초청되었습니다. 정상인 같으면 7-8분이면 충분한 내용이었지만 Neal에게는 20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증을 마쳤을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단하였고,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경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숫자였다고 합니다.
성공과 실패가 그 사람의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린 사건을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까? 그가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에도 그는 여전히 한 어린 소년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니까, 다윗은 정말로 무능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왕을 두려워하여 도망쳤습니다. 이방인 왕에게 피하여 목숨을 구걸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고, 그 아기스 왕을 심히 두려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미친 체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려서 아둘람 굴로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나약하기 짝이 없던 모습의 다윗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을 왕이 되게 한 다윗의 능력이 무엇이었을까요?
1. 하나님의 뜻이 특출한 지도자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다윗은 결코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라가겠습니까?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 특출난 지도자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우리도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능력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집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다윗은 결코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을 보면, 무슨 힘을 가졌다 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다윗이 왕에게 미움을 받음으로써 이제는 함께 죄인이 되어버린 가족들이 그에게로 왔고, 환난당한 자와 빚진 자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 능력 있는 사라들의 도움으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우리도 성공할 기능성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이민자의 삶 속에서 무슨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가족들로부터도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 힘없는 여인들과 죄인들과 병자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3. 다윗의 능력은 다윗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와 동행한 400명의 핵심세력에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운명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그에게 왔다고 하였는데, 사울 왕에게 미움을 사게 된 그들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마음으로 다윗에게 왔을 것입니다.
‘운명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리 크게 성장하던 조직이라도 욕심과 다툼으로 분열되게 되어 있습니다.
미시간 주에 사는 15세 소년이 암에 걸려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방사선과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렸습니다. 학교를 가기가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자를 쓰고 등교하여 교실에 들어간 그 학생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기 반의 모든 친구들이 머리를 자르고 면도까지 한 채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말로는 ‘운명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6절에 보면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제안하였고, 마태복음 26장 33절에 보면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이해의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환난당한 자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비탄과 걱정 그리고 고민을 깊이 맛본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남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빚진 자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자신이 부족함을 심각하게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남의 부족한 사정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은 결속력이 강하지 못합니다.
넷째로, 그들은 ‘탐구의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불평불만’이 아니라 ‘욕구불만’을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강한 욕구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창의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확실한 비젼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결코 발전하지 못합니다.
어떤 시골 마을에서 경매가 벌어졌습니다. 사회자가 허름한 바이얼린 하나를 들고 외쳤습니다. ‘단돈 $2에 사실 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다시 소리쳤습니다. ‘자, $1에 드리겠습니다!’ 그 때 한 노인이 앞으로 나와서 사회자의 허락을 받고 그 바이얼린으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였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서로 사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1,000!’, ‘$2,000’, ‘$3,000’,,,
아무리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고 누군가가 바꾸면 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무능한 사람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바꾸시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꾸시면, 함께 죽고자 하던 자들이 다 함께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꾸시면, 환난 당했던 자들이 오히려 남들을 보호해주는 능력자들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꾸시면, 빚을 졌지고 고생하였던 자들이 꾸어주고도 남음이 있는 풍요한 자들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꾸시면, 욕구를 채우지 못하였던 자들이 놀라운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능력’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400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능력의 종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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