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3:16~21 9/26/2004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인간에게 있어서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이 그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무거운 죄를 범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렸을 때 사랑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란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어렸을 때 동생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사랑을 받았지만 본인은 늘 말썽장이였고 아버지의 꾸중만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동생만 사랑하고 본인은 미워한다는 생각에,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점점 더 심각한 문제아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고 있는데 얼굴에 뜨거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떠 보았더니, 아버지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동생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음날부터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에는 목사까지 되었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기 전에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갖지 못합니다. 그저 원망하고 불평불만하면서 불행하게 살아가기 쉽습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운동회를 할 때,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떡을 찾아 먹는 시합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먹음직한 떡이 상 위에 쌓여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만, 눈을 가리고 있으니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찾기만 하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데... 사랑에 굶주린 인간의 상태가 마치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분명히 있는데, 손만 내밀면 받을 수 있는데,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후에,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두 고아원이 있었는데, 한 고아원은 아이들의 사망률이 매우 낮은 반면, 다른 고아원은 그 고아원에 비해 시설이 훨씬 좋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배도 훨씬 넘는 비율로 많은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아이를 전쟁터에서 잃고 헤매던 한 어머니가 어느 날 그 고아원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원장의 허락을 얻어 그 고아원에 머물면서 아이들을 자기 아이처럼 사랑을 베풀며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랑에는 생명을 살려주는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I.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말씀으로 모든 인간들에게 선포하시고 알려주셨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잇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예레미야 31장 20절은 하나님께서 책망 받는 자녀들까지도 사랑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세아 14장 4절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진노를 거두셨다고 증거합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신명기 7장 13절은 사랑의 결과로 복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오늘 본문 16절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사랑이 인간들의 귀에 선포되지 않았다면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갈 수 없다면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II.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분명하게 증거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부터 5절에서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증거합니다.
요한일서 3장16절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6절에서도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손에 넘겨주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사랑이 말로만 끝나고 증거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이 막연한 상태로 끝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분명하게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며 영생을 얻은 기쁨도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III. 선포되고 증거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려면 우리가 구원받아야만 합니다.
내가 구원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16하, 18) 믿음은 진리를 좇는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자라가고 깊어집니다.(19-21)
내가 빛을 싫어하고, 진리를 선택하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여전히 어두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금 어두움에 머물러 있도록 유혹합니다. 허탄한 세상을 좇아가도록 속입니다. 잠시 동안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빛 가운데로 나아가고 진리를 선택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무디가 어느 겨울 날 어린 딸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눈이 얼어붙어서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무디가 손을 내밀고 딸에게 손을 잡고 안전하게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딸은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하면서 손을 뿌리쳤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손가락 하나만 잡아주세요. 그러면 넘어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하면서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얼마 가지 못하여서 다시 넘어졌습니다. 그제서야 ‘내 손을 꽉 잡아 주세요’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잡아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여러분 손을 꽉 잡아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가치를 갖는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독생자와 바꾸신 그 한없는 사랑을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이시고 빛과 진리 가운데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영접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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