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14, 2012

천국복음 "다 내게로 오라" [2004-10-31]



본문 : 마태복음 11:20~30 10/31/2004
(20)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시지프스의 신화에 보면,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 헬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시지프스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자였지만, 너무 교만하여 제우스 신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에는 ‘바위가 늘 산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둥근 모양의 바위는 산꼭대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아래로 굴러갔고, 그는 쫓아내려가 다시 그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려 올라가야 하였고, 힘이 다 빠져 쓰러질 때까지 그 부질없는 일을 계속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 시지프스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이루려고 애쓰지만 결국에는 다 놓고 떠나야 되는 인생들입니다. 부모가 쌓았다가 무너진 것을 자녀들이 이어서 또 쌓아가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집니다. 모든 인간들은 세상의 멍에 아래에서 고생하며 세상의 짐을 지고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수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짐이 무거워집니다. 고통과 허무만이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정말 그런 것인가요? 정말로 그렇게 고통과 허무만 있다면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들어 한국에서는 30대와 40대의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천국복음이란 하늘나라에서 전해주는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왜 기쁜 소식입니까? 세상의 멍에와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져가는 인간들을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쉬게 한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anapawo’인데, 영어로 표현하면, ‘일하던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뜻도 있지만 ‘원기가 샘솟게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빈둥빈둥 노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한 후에 뿌듯함을 느끼는 상태, 운동한 후의 상쾌함, 또는 산꼭대기에 오른 등산가의 기쁨 등이 바로 이 ‘쉰다’는 말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I. 그러면 어떻게 하면 쉬게 됩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의 멍에와 짐을 짐으로써 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멍에’는 소속되거나 속박되어 있는 상태 또는 결속된 관계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어딘가에 반드시 소속되게 되어 있고, 또한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멍에를 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멍에를 짐으로 인하여 반드시 짐도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농부에게 소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부지런하고 착한 반면, 다른 소는 꾀가 많고 게을렀습니다. 하루는 장에 가서 물건을 샀는데, 마차 하나에는 솜을 가득 실었고, 다른 마차에는 소금을 가득 실었습니다. 농부는 솜을 실은 마차는 착한 소가 끌게 하고, 소금을 실은 마차는 게으른 소가 끌게 하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게으른 소가 아픈척 하면서 엄살을 부렸습니다. 농부는 하는 수 없이 마차를 바꾸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엄청난 비가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짐은 가볍다고 합니다. 그래서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II. 내게 배우라
그러면 어떻게 그 멍에가 쉽고 그 짐이 가벼울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29절에 보면, 예수께 배우면 알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이며,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는 쉽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주님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맡기시는 짐은 가볍습니다. 그 짐은 천국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힘주시고 도와주시며, 대신 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가 그 사실들을 증거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배우라는 말씀입니까?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하십니다. 온유와 겸손이 세상 멍에와 짐을 버리는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고 5절에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운다면, 우리의 멍에는 쉽고 우리의 짐은 가벼워질 것입니다. 쉬게 될 것입니다.

III. 다 내게로 오라
어떤 청년이 교통경찰에게 카네기홀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더니, ‘카네기 홀로 가는 길은 열심히 연습을 많이 하는 길 밖에 없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도 ‘아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다’라고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움으로써 쉼을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예수께로 가면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멍에가 쉬워지고 짐이 가벼워집니다. 예수께로 가지 않으면 멍에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짐은 점점 더 무거워져서 도저히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로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21절에 의하면 그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였던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욕심대로 따라가던 방향을 하나님께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에 의하면 ‘겸손한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28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그 길을 다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초청하셨습니다. 주님께로 가면, 천국의 영원한 안식과 땅에서 참된 행복을 반드시 얻게 됩니다. 주님의 약속이요, 또한 먼저 가 본 성도들의 간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여러분,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예수님이 주시는 짐은 가볍습니다.
세상 멍에 대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세상 짐 대신 예수님의 짐을 지십시오.
그에게 가서 배웁시다. 누구든지 다 오라고 초청하시고 있습니다.
(영접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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