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14, 2012

"신앙과 응답" - [2004-10-3]



본문 : 다니엘 3:13~18 10/3/2004
(13)느부갓네살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 온지라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15)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바램과 소망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을 때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좋은 것으로 응답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는 모습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우리들의 상식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 100세에 아들을 허락하시고 나서 어느 날 ‘네 아들 이삭을 내게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가나안 땅을 보면서도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응답받은 신앙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잔이 지나갈 수만 있으면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지만 결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 받은 아들의 신앙인이었다고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많은 성도들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자기 믿음을 의심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라고 생각하면서 한탄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인지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I.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
다니엘서는 다니엘의 신앙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사자 굴에 던지겠다고 위협하였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살아나왔습니다. 모든 신앙인이 흠모할만한 신앙의 모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다니엘에 못지 않는 신앙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하게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만, 그들은 왕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고 기도하였지만 결국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까? 아니라고 하실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15절에서 느브겟네살 왕이 위협할 때, 그들은 16절부터 18절의 말로 응답하였습니다. 그저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실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응답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신앙이 아니라, 순수한 신앙 그 자체였습니다.

II. 신앙과 응답의 관계
어떤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고 응답이 있으면 믿음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응답이 믿음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의 정도에 따라서 믿음도 파도를 칩니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시험에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휩쓸리면서 방황하다가 지쳐 쓰러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서입니다. 물질적인 방법으로 응답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은 신앙의 결과이지 신앙의 조건이 아닙니다. 반면에 신앙의 목적은 내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물질적인 응답을 위해서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8절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하면서 왕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참된 신앙의 극치입니다.
마틴 루터의 친구 중에 존 브렌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을 일으킨 주역이었습니다. 그가 군인들에게 쫓기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지금 빨리 일어나서 빵 한 조각을 가지고 아래 마을에 있는 창고 다락방 속으로 숨어라’ 그는 즉시 일어나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는 군인들이 지키는 그 창고에서 무려 14년 동안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요? 신기하게도 매일같이 암탉 한 마리가 올라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알을 낳아주었습니다. 무려 1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러분 같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14년 동안 하루에 계란 하나로 매일 똑같이 먹고 살았는데도요? 그러면 그에게 신앙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면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응답하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응답과 신앙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응답이 아니라 신앙에서 먼저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하나님 뜻대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III. 느브갓네살 왕의 위협 앞에서 신앙을 지킨 세 친구들에게서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오늘날의 왕의 신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안락함입니다. 현대인들이 최고로 바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왕의 신상은 무엇입니까? 세계적인 갑부, 세계적인 권력자, 세계적인 가수나 배 또는 운동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느브갓네살 왕은 무엇입니까? 물질문명의 거센 흐름입니다. ‘그 흐름을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고 위협합니다. 오늘날의 왕의 신하들은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성공 숭배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없고 신앙도 무용지물이라고 조롱합니다. 오늘날의 풀무불은 무엇입니까? 가난과 육체적 고통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위협 앞에서 어떤 신앙을 가질 것입니까? 그들의 위협에 굴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떠나겠습니까?
어떤 유명한 화가의 집에 도둑이 들어와 아주 귀한 그림을 훔쳐갔습니다. 화가의 아내는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고 울고불고 하였지만, 화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며 대드는 아내에게 그는 ‘창의력은 내 머리 속에 있고 그 그림은 그 창의력의 결과 중에 하나였을 뿐이오. 내 머리를 도둑질해가지 않았으니 무엇이 그렇게 큰 문제란 말이오?’라고 대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신앙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라고 소망하며 부르짖은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기도의 응답과 신앙을 구별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응답은 승리하는 신앙의 조건이 아닙니다! 조건 없는 신앙에 먼저 성공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리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잇도록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이 날마다 이루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