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계시록 8:1~5
(1)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2)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기도와 편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신자와 발신자와 내용 그리고 전달자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 가르치신 기도'의 첫 번째 부르짖음 속에는 기도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원문에서의 순서는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입니다. 영어로는 'our Father, who is in the Heavens'이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은 기도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기도들을 천사들이 하나님께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정확하게 하나님께 드려질 때(4절) 그 기도가 열납되고 굉장한 응답을 받게 됩니다.(5절)
편지에 수신자의 주소와 이름이 있듯이, 기도에도 그 기도를 받으시는 수신자가 정확하게 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 주소는 하늘이고 받으시는 본인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4절) 발신자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하는 것이므로 굳이 밝히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이 있듯이, 기도에도 기도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전달자는 천사들이 하게 되므로 실수가 없을 것이므로(3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신자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우체국마다 골치를 썩이는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편지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되겠습니까? 수신자가 정확하지 않으면, 엉뚱한 수신자에게로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응답되는 기도의 본론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할 3가지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기도는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초월적인 아버지이시며, 그것을 가로막는 자는 사탄의 무리일 것입니다. 기도는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요, 다른 어떤 영적 존재를 향해서도 안 됩니다. 천사들이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 하더라도, 기도의 최종 수신자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할 때 아버지께 하듯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마치 종이 왕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하는 유대인들의 기도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그렇게 친밀한 관계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세 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자녀로서(삶의 모습으로) 기도하는가?
(2)사랑의 관계를 토대로 아버지를 부르는가?
(3)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40대 남자가 자기 60대 어머니에게 "어머니, 교회 가기 싫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유를 물었더니, "주일 날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서 가야 되니까 그게 싫고, 두 번째는 성가대가 불협화음으로 할 때는 정말 죽이고 싶도록 싫고, 세 번째는 장로님 기도가 얼마나 긴지 그것 때문에 싫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내가 너에게 그래도 교회에 가야만 되는 이유 3 가지를 말하겠다"라고 했답니다. "첫째, 교회는 사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니까 가야 되고, 두 번째,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가야 되고, 세 번째는 (조금 쉬었다가...) 네가 그 교회 담임 목사니까 가야된다." 그랬답니다.
2. 둘째로, 그 아버지는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실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사람들이 생각으로 지어낸 헛된 우상이 아니십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사람(피조물)에게' 또는 '피조물을 통하여(도움)'라는 말과 반대되는 의미이며, 물질적 우주로 제한되지 않는 초월적인 의미입니다. 원문에서는 '하늘들'이라는 복수의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 즉, 영적인 나라를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세 번째 하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다음의 3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나에게 부활 신앙이 있는가? 아니면 천국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2)천국의 소망으로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절망과 좌절 속에서 불평불만과 원망함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3)이 땅의 것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3. 셋째로, 그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편파적인 왕이 아닙니다.
'우리'라는 말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에 부모 앞에서 자기가 더 많이 받으려고 싸우는 형제가 있고 양보하는 형제가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본문 3절에서도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다음의 3가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아버지의 입장에 서서 기도해 보았는가? 아니면 나 혼자만의 성공을 위해 내 입장에서만 기도하는가?
(2)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한 믿음의 형제는 없는가?
(3)아버지의 사랑으로 믿음의 형제를 대하고 있는가?
19세기 말 영국에서, 스펄전 목사님과 캠벨 목사님이 활약하던 동시대에 F.B. 메이어(F.B. Meyer:1847-1929) 목사님이 런던의 크라이스트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오른쪽에는 그 당시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이 메트로폴리탄 테버너클에서 매주일 아침 6천여 명의 회중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그의 설교는 영국은 물론 미국에까지 알려져서 월요일이면 신문에 인쇄되어 전국에 배포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웨스트민스트 예배당은 영국의 위대한 성경 교사로 알려진 G. 캠벨 모건(G. Campbell Morgan, 1863- 1945) 목사님이 강단을 맡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메이어 목사님이 어느 지역에 초청을 받는데,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곳에 모이기로 예정되어 있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캠벨 모건 목사님도 그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메이어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오려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 캠벨 모건 목사님에게로 가고 말았습니다.
스펄전과 모건 사이에서 고심하고 낙심하던 메이어 목사님은 설교자의 신분으로 스펄전과 모건을 질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메이어 목사님은 적극적인 다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두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메이어 목사님은 나중에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작은 양떼를 위해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교회의 빈자리들을 채워 주소서. 부흥을 일으켜 주소서.'라고 기도할 때마다 축복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우리 교회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던 스펄전 목사를 위해 '하나님 스펄전 목사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하고, 또 내 교회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의 캠벨 모건을 위해 '하나님 모건 목사를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굳이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그들의 축복의 잔이 흘러 넘쳐서 내 작은 양동이까지 채워지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 기억합시다. 우리는 외식하는 자들 또는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 천국 바라보며 그리고 모든 믿음의 형제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기도의 응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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