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6:9~23 (9)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17)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쌔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오직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온 인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이루시고자 이스라엘을 먼저 부르셨고 그 사명을 맡겨주시고자 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이방인들에게 임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태도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선입견으로 심어졌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실수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의 태도를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먼저 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고 잘 준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닫힌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 일어나 잡아 먹으라.(13절) 환상 중에 정결하지 않은 짐승들이 베드로에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때로는 나의 틀을 벗어난다고 생각되는 하나님의 명령들이 나에게 적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명령에 대해 성도는 거부하든지 또는 수락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주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계속 두드리신다고 하였습니다. <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두드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꿈으로, 음성으로, 말씀으로, 또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성도들에게는 목사의 권면을 통하여 음성을 주시기도 합니다. 2.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14) 그 때 베드로는 14절 말씀처럼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세 번이나 그러하였다는 것은 완전한 거부를 의미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공생애에 3년이 넘도록 함께 참여하였던 베드로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틀 속에서 살아갑니다. '고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틀을 깨거나 벗어나는 일은 말로는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를 분명하게 알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만이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팔 자임을 알면서도 가룟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달 원수들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 일본 통일을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는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혼노지라는 절에서 묵던 중, 자신의 부하 아케치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써, 내부의 적을 경계하라는 의미심장한 일본의 속담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그리스도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거부한다면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3.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주인이시라면, 하나님의 명령이 최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고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만 합니다. 내 뜻대로 하고자 한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창조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새 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환경을 변경시키기시고 사람과 천사를 동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 앞에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보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구원하고 사용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 말씀처럼, 아버지 뜻대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행하여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있어야 합니다. 옛날 미국 개척시대에는 양 도둑이 많아 사회의 큰 문제꺼리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에서는 붙잡힌 양 도둑에게는 이마에 양 도둑(Sheep Thief)이란 뜻으로 S와 T자를 낙인시키기로 했습니다. ST 두 글자를 이마에 낙인하기 위해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사람의 이마에 찍으니 그 고통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이마에 "양도둑"을 의미하는 ST라는 낙인을 이마에 표시하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양 도둑이 함께 붙잡혔습니다. 법에 따라 그들 두 사람은 이마에 ST가 낙인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왕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남에게 못할 일만 하다가 폐인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는 이마에 찍힌 불명예를 지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잘못을 용서받겠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우며 성실히 살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자 그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될 시점에는 ST 낙인의 법도 폐지된 지 상당히 오래되어 사람들은 ST의 의미를 잊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너무나 친절한 이 할아버지의 이마에 찍힌 ST라는 글자가 무엇인지 몰라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ST의 의미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ST는 성자(Saint)의 약자인 St 이다." 한 양 도둑은 자기 뜻대로 살다가 도둑으로 그 생명을 끝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동일한 도둑이었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을 때 성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부족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에 순간마다 마음을 열고 따라갑시다. 그러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
Friday, March 16, 2012
스도인의 덕목(2) - “열린 마음”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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