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6:34~44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허랑이를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산으로 가야 하지요. 물고기를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당연히 바다나 강으로 가야 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려고 한다면 매우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그의 모범을 발견하고 따라 하면 되는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림으로써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옛날이야기라고 무시합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되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1991년에, 약 5,300년 된, 빙하 속에 얼어붙어서 원형 그대로 발견된 어떤 사람이 신발을 신은 채로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는 신발 소재 전문 연구소에서 정밀 분석을 한 결과, 그 신발은 ‘현대에 개발된 어떤 신발보다도 훨씬 우수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합니다. 진리는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모범이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방법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이 감사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른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하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나 되게 모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하였다고 하지만, 이러한 기적을 흉내 낼만한 기술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41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축사’란 ‘감사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더니,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감사만 하면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감사도 감사 나름입니다. 만약에 어떤 대가를 바라면서 감사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결과가 이미 이루어진 것을 가지고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결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감사의 능력은 무엇 때문에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세 가지 요소들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감사의 능력의 삼 요소 첫째 요소는 ‘어린 아이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이 없는 감사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을 바라는 허영심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나병환자를 싫어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나병환자가 앞에서 걸어왔습니다. 프란시스는 그 나병환자를 멀리 피하면서 걸어갔습니다. 그 때 주님의 책망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다시 그 나병환자에게로 가서 끌어안고 입을 맞춘 후에 길을 갔습니다. 조금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아 그리스도였구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결코 참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둘째 요소는 ‘질서와 순종의 자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질서’라는 말에 ‘order’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질서’라는 뜻이 있는 동시에 ‘명령’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순종을 무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외치는 감사의 말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아버지가 네 아들들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주시는 심부름 값을 받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조금 얻어맞은 후에 심부름을 하였고, 똑같은 심부름 값을 받은 후에 아버지에게 감사하였습니다. 다른 아들은 아주 많이 얻어맞은 후에 심부름을 하였으며, 똑같은 심부름 값을 받고 아버지에게 감사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넷째 아들은 끝까지 버티면서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에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자, 그러면 나중에 또 심부름을 시킬 일이 생겼을 때 그 아버지는 어떤 아들에게 일을 맡기고 싶을까요? 여러분은 어느 아들에 해당하겠습니까? 셋째 요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결코 참된 의미의 감사가 아닐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비슷한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 모여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겼습니다. 주님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 보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까? 아마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저들에게 주실 줄로 믿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우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저 원수들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든 등불은 희망이고 위로였으며 생명공급 그 자체였다’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로서는 최초로 1907년에 영국 국왕의 훈장을 받았는데, 그 훈장에는 ‘긍휼을 베푸는 것은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돈보다 말로 할 수 있습니다. 돈과 말로 할 수 없을 때는 눈물로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낳습니다. 주님의 감사는 이 세 가지 요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만약에 이 세 가지 요소들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아무리 크게 외치는 감사의 말이라도 공허한 말장난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3. 여러분은 어떤 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면, 주님의 마음을 품고 감사하십시오. 질서와 순종에 무감각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한 희생을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신앙적으로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을 먼저 찾아 드리면서 감사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어린아이처럼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립시다. 하나님의 질서 위에서 순종합시다.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본받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합시다! 배고파 지칠 때, 아직 기적의 떡을 먹지 못할을 때, 그리고 주님이 명령하실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보여주셨던 그 감사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Thursday, March 15, 2012
“감사의 능력(2)” (11/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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