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9:1~12
(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믿음'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어떤 것들을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대부분이 어떤 초월적 존재 또는 능력에 의존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종류는 다르지만 둘 다 '믿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땅은 꺼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걸어 다니고, 집이나 빌딩을 땅 위에 건축하면서도 땅이 어떻게 되리라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서도 다른 점이 있는데,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 외에 하나님의 영(보혜사 성령)이 심령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오직 참 그리스도인들만이 소유하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1. 믿음과 성령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에서 에베소의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은 별개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동시에 성령충만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보혜사 성령도 받았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믿음 있는 어떤 사람들은 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있음에 대해 듣지도 못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2. '믿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래 믿으면,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교회에서 직분이 높아지면 자동으로 '믿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믿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해도 됩니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공부만 잘하는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학생을 선발하지 않겠다는 지난달의 선언에 어울리는 잇단 교육개혁의 시도인데, 이번 안의 골자는 '인성·리더십 강좌'를 필수과목으로 격상시키고 '리더십 마일리지제'를 다음 학기부터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KAIST 재학생들은 이제까지 선택과목이던 '피닉스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훈련', '문화활동' 등 3과목중 2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합니다.
KAIST측은 이러한 교육개혁의 취지에 대해 "10년 후 한국사회를 이끌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서남표 총장이 "지식탐구에만 몰두하는 ‘공부기계’를 배출하는 교육체계로는 학생 자신은 물론 KAIST, 나아가 한국의 미래도 없다"고 한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특출난 인재라고 배출한 졸업생이라 해도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학은 그동안 학업성적이 우수할 경우 인재로 인정해온 반면, 사회 특히 기업에서는 학업성적에다 인성이나 위기대응능력,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점수가 높을 경우 인재로 인정하는 추세였습니다. 대학과 사회의 인재에 대한 시각차가 크면 클수록 사회는 대학의 교육을 불신하게 되고 대학은 배출한 학생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를 원망할 것입니다. 이런 격차를 최대한 줄여보자는 것이 KAIST의 교육개혁안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믿음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믿음 있는 사람'을 기계로 찍어내듯이 훈련시켜서 배출하는 공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사울은 당대에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고 율법에 철저하게 매인 자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 매우 좋은 자'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주님의 일이 방해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그 사울 즉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후에야 비로소 성령 충만의 열매들을 나타내게 되었고, '복음에 매인 자'로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그리스도인은 믿음위에 보혜사 성령 즉 그리스도의 영을 충만하게 받는 사람입니다.
3. 성령 충만한 성도는
첫째로, '하나님과 일치되는 자'입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공통적인 특성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지며, 그 결과로 상호 협동이 가능하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사명자'입니다. 만약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직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이기심과 고집과 교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일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하나님의 일에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천국에서도 큰 자입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크게 진보를 이루게 됩니다. 이미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면서, 진리를 깊이 깨닫고 삶 속에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보는 천국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어 상대적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지 다가간 성숙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주님은 누가복음 19장 11-27절에서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길을 떠나면서 10명을 종들을 불러 각각에게 한 므나씩 맡기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남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 각자에게 그의 능력에 맞도록 공평한 달란트를 주셨고, 그 달란트를 활용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진보를 이룩하시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가지고 돌아와 그 종들과 회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종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반면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종은 주인으로부터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얼마만큼 성숙되고 진보를 이룩하였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그 가치가 그대로 인정이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에게만 칭찬 받는, 겉으로만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칭찬받으실만한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 충만을 항상 유지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고,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사명자 역할을 감당하며, 또한 천국에 갔을 때 큰 자로 인정받을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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