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9:9~17 6/12/2005 (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오늘 본문은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던 예수님께서 마태를 사도로 부르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관에 앉아서 일을 보던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주님을 따라나섰으며, 주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면서, 바리새인들이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는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대하여 주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였습니다. 천국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태의 태도를 칭찬해고, 함께 참여한 세리들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마태를 비난하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두 부류가 등장하였습니다. 1. 바리새인들의 비난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의인이고 그들은 병자와 죄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11절) 그들의 태도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에 따라서 즉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자격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세리들과 이미 율법적으로 죄를 범한 죄인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으며,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예수는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분명하게 증거하시는 실상은 무엇입니까? ‘건강한 자와 의인은 예수를 좇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12-13절) 바리새인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옳습니까 아니면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옳습니까? 캐나다에 있는 심장ㆍ뇌졸증 재단(HSF)에서 조사한 결과,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것이 도시 한복판에 사는 것보다 건강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걸어 다닐 기회가 거의 없는 반면, 도시 한복판에 사는 사람들은 교통체증을 피하여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바리새인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크게 오해함으로써 천국을 배척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2.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한의 제자들 역시 ‘우리가 의인이고 그들은 죄인’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14절) 그들의 비난은 전통과 관습에 의한 행위에 바탕을 두고 판단하는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실상은 무엇입니까? ‘전통과 관습에 매인 자는 예수를 좇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16-17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천국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대해지면서 중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다시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자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옛날에는 ‘천자문(1,000 basic chinese characters)’을 억지로 외우도록 하여 한문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울북’이라는 출판사에서 ‘마법 천자문’이라는 만화책을 인쇄하였는데 2년여 만에 무려 280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이 책은 47세의 김진철 상무가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여 만든 작품인데, 딱딱하고 재미 없는 천자문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재미있게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책을 출판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만화를 무척 좋아하는 8살 된 아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자 때문에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아들이 좋아하는 손오공 이야기와 천자문을 합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한자 교습서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던 파격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천국복음 역시 그러합니다. 인간들이 만들고 대대로 물려받는 전통과 관습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주님이 주시는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 부대가 찢어지고 새 포도주도 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3. 반면에, 마태는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9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나를 좇으라’고 초청하시자, 마태는 아무 비난이나 의심 없이 ‘일어나 좇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는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요한의 제자들이 아니라 마태가 최고로 반가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은 ‘백마탄 왕자보다 삼돌이 택할래요’라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많은 돈이나 권세를 가지고 마치 하녀 하나를 얻듯이 결혼하려는 능력 있는 남자보다는, 집안일을 분담해서 같이 하고 친근한 머슴처럼 자상하게 자신을 돌보아줄 남자를 훨씬 더 좋은 남편감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게 환영받을만한 사람입니까? 그러면 마태는 왜 예수를 좇아갔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찬국사다리를 올라가야 마태처럼 성공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로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13절) 마태는 주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죄사함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으니, 그를 좇아가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자기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천국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의원은 병든 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12절) 마태는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시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의원이시니, 그를 좇아가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코 천국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가 필요하다’고 선언하십니다.(17절) 예수님의 말씀이 새 포도주이니, 전통과 관습을 초월하여 주님을 좇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두려움으로 인하여 전통과 관습에 매어 있는 사람은 천국사다리를 올라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 당신을 초청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어떤 자격을 가지고 비난하겠습니까? 아니면 요한의 제자들처럼 전통과 관습을 가지고 비난하겠습니까? 아니면 마태처럼 즉시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시겠습니까? 주님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발견하였다면, 즉시 일어나 좇아가고, 끝까지 좇아가 천국 문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
Thursday, March 15, 2012
천국사다리(16) - ““일어나 좇으니라” [20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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