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9:1~8 6/5/2005
(1)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천국 복음을 증거하던 중에 하루는 본 동네를 방문하여 어느 집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을 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서기관들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이 신성모독죄를 범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까지도 분명히 아시면서 그 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그 사람은 자신이 누워있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현장에는 두 부류의 등장인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서기관들입니다.
1. 자격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면, 이 두 부류들 중에 누가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기관이라는 직책은 전문적으로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의 시대에도 존재하였던, 아주 오래된 직책이었는데, 그들은 히브리 궁정에서 사건을 기록하는 아주 높은 직책에 있던 자들이었고, 나중에는 주로 바리새파에 속하는 사람들로써,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믿음에 있어서 스스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또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해 주었던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2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도 그 중풍병자를 ‘소자’라고 부르고 있듯이, 그는 그 사회에서 전혀 중요하거나 높은 직책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풍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버림받은 죄인이었으며,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친구들 역시 무엇 하나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날의 서기관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세상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들 또는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는 신학자, 목사, 장로, 또는 먼저 된 자로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반면에 오늘날의 중풍병자들은 태산 같은 문제 앞에 좌절하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매달리는 성도들일 것입니다.
2. 자세
마가복음 2장 3-12절과 누가복음 5장 18-26절에 보면 이 사건이 보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친구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가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어떤 집의 지붕을 뜯고 침상채로 그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반면에 서기관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기를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를 짓는 죄인이라고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이 두 부류가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로, 서기관들은 지식 만능주의와 지식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의인이 된 사람들이었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서 앉아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피조물의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비난하고 배척하였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서기관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지식은 많이 갖고 있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그 지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바보들입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 남들을 비판하고 비난할 뿐, 스스로는 아무런 믿음의 행동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중국의 계림이라는 지역에 가면 잘 훈련받은 가마우지라는 새 한 마리가 황소 한 마리보다 훨씬 비싸다고 합니다. 가마우지 새를 가진 어부들이 먹이를 주지 않아 배가 고파진 그 새를 배에 태우고 깊은 강으로 가서 명령하면, 그 가마우지는 물 속으로 들어가 큰 부리로 30센티가 넘는 물고기들을 잡아 물 위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주인이 이미 목을 줄로 묶어두었기 때문에 물고기는 삼키지 못하고, 주인이 그 입에서 물고기를 빼내어 자기 망태기에 담는다고 합니다. 서기관들이 바로 그 가마우지 새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둘째로,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그 불치의 병인 중풍병으로부터 벗어나 온전케 되기를 너무나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2절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시인하고 있었고, 겸손과 순종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온전한 신뢰와 확신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체험하기를 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왔습니다.
3. 이 두 부류에 대한 주님의 판단은 무엇이었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확실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서기관들을 향해서는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책망을 하셨고,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을 행해서는 ‘저희의 믿음을 보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사다리 올라가는 믿음은 곧 ‘죄 사함을 받는 믿음’이고, 그 믿음은 서기관들이 아니라 중풍병자들이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중풍병자의 믿음의 모습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온전케 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무관심하고 죄에 대해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는 서기관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열정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열정적으로 말만 하고 머리로 판단만 하고 있는 서기관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서기관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전설적인 권투선수 George Forman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1994년 11월 6일 권투선수로서는 할아버지의 나이라고 볼 수 있는 45세의 나이에 WBA와 IBF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에 도전하여 27세의 Michael Moorer에게 승리하여 당당한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는 20년 전인 1974년에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배한 후 링을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전도사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형편이 어려운 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대전료를 받아 전도기금으로 쓰기 위하여 다시 권투를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주님께 대한 열정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천국사다리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나아갑시다! 여러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그 일을 주님은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직 여러분의 믿음만을 보십니다. 온전함에 대한 열망을 갖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며 겸손과 순종으로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써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