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내 인생의 첫 걸음” (1/25/2004)



본문 : 전도서 12:1,6~14
(1)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6)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7)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11)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바니라 (12)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13)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4)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오늘 본문인 전도서는 전도자의 외침을 기록한 책인데, 영어성경에서는 전도자라는 단어를 Teacher(NIV) 또는 Preacher(KJV,NASB)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도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치는 자 또는 전파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12장은 전체의 결론부분인데, 1장 2절의 말씀(“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이 8절에서 거의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헛된지, 여러 번 반복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헛된 것이라면, 그것이 전도자의 결론이라면, 우리들은 우리의 인생을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전도자가 깨닫고 외친 것을 우리들도 잘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I. 6절과 7절은 세상 일의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그 결국은 8절 말씀처럼 헛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 쾌락은 막연한 추억 속에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소유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더 많은 물질을 축적하고, 더 높은 권세를 누려보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물질이라도,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노년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삽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직장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 또는 친구들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깝고 깊은 관계를 맺는다 하여도,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그들이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어떤 명예를 위해서 삽니다. 선을 행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선행에 대하여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그에게 갚아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면밀하게 따져보면 세상은 결국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에 내가 세상에 목적을 두고 살면, 그것은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았다면 나에게 뭔가가 영원히 남아야 되는데, 아무 것도 남지 않으니, 내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목적을 두고 살면서 ‘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여전히 세상 유혹에 자기 인생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송현이라는 시인이 쓴 “어느 쥐의 유언”이라는 시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어느 늙은 쥐가 죽을 때가 되어 이렇게 유언을 하였답니다. “내 말 귀담아 듣거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은 저마다 무서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 무서움의 형식을 감추고 있는 무서움이 가장 무서운 무서움이다. 내 말 잘 알아듣거라. 고양이와 쥐덫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니다.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로 있고 쥐덫은 언제나 쥐덫으로 있으니, 내 나이가 되면 고양이쯤이야 차라리 같이 늙어가는 이웃일 수도 있고, 쥐덫쯤이야 내 슬기의 시험대 정도로 그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양이도 아니고 쥐덫도 아니고, 무서움을 다채롭게 위장한 쥐약이다. 쥐약의 외형은 탐욕의 혀끝과 코끝을 유혹하기 위해 자연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우호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러나 쥐약의 외형이 어떻거나 간에 쥐약은 쥐약이다. 이 바보들아.”
세상은 헛되다는 진실을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여 보이지 않게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그 세상을 위해 인생을 허비하도록 유혹합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세상에게 빼앗기는 인생입니다.

II. 그러므로 사람은 세상의 헛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인간이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까? 만약에, 세상의 헛됨은 깨달았으나, 그리하여 자기 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하려 하나, 그 길을 찾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절망할 것입니다.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빠져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왕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신하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답니다. 너무나 충성한 신하였기에 왕은 크게 슬퍼하면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나에게 평생토록 충성을 다 바쳤으니, 네 소원 한 가지를 내가 들어주겠다. 말해보거라.’ 그 신하가 대답하였습니다. ‘왕이여,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나의 생명을 하루만 더 연장시켜 주십시오.’ 그러자 왕은 ‘내가 다른 소원은 들어줄 수 있지만, 그 소원만큼은 전혀 들어줄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숨을 거두면서, ‘아, 내가 왕을 모시는 일보다 하나님을 모시는 일에 조금이라도 더 신간을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하더랍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가 외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길을 아시고, 또한 그것을 가르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깊이 새겨서 들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기를 바랍니다.

III. 하나님을 만난 인생은 13절 말씀이 증거 하는 것처럼 사람의 본분을 되찾게 됩니다. 창조주께서 나를 지으실 때 내 인생의 고유한 목적을 주셨는데, 그것을 성취할 때 비로소 그것이 나의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성취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14절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에서 살아남게 되어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인생이고, 그렇게 될 때에만 우리는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참된 내 인생의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현수교를 놓을 때, 처음부터 굵은 쇠줄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친답니다. 처음에는 아주 가는 줄을 연에 매달아 공중에 띄웁니다. 그리고 연이 강 건너편에 떨어지게 한 후에, 그 줄에 조금 더 굵은 줄을 매달아 당깁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반복하면, 다리를 놓을만한 굵은 줄로 강 양편을 잇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헛된 세상의 강이 가로막고 있을 때, 내 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하는 내가 어떻게 그것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만날수록 그 길이 점점 넓어지고 결국에는 대로를 통하여 쉽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헛되다는 것을 반드시 그리고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빼앗겨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따라가십시오! 그 분만이 내 인생의 길을 안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가까이 따라가십시오! 12절과 13절 말씀처럼 그 경계를 받고 그 명령을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복된 인생의 길이 점점 더 넓게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 길로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전파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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