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5, 2012

“아기 예수께 경배하세!” (12/18/2005)



본문 : 마태복음 2:1~12    12/18/2005
(1)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0)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 올수록 더 크게 환영합니다. 만약에 대통령이 자기 마을에 온다면, 다들 몰려나가 대대적으로 환영할 것입니다. 클린턴이 대통령 시절에, 하루는 사람들을 피하여 조용한 공원에 가서 쉬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구석진 자리에 벤치가 있어서 걸터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거지 한 사람이 클린턴을 향하여 달려왔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속으로 ‘아, 거지도 날 알아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는데, 가까이 온 거지가 이렇게 소리치더랍니다. ‘비켜! 여긴 내 자리란 말이야!’

1.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면,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영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로서, 계시된 메시야로서, 그리고 믿는 자들의 주님으로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님이 오셨을 때, 아무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그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전에 오셨던 모습으로 주님이 오늘날 다시 오신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스문트 겟치라는 화가가 ‘버림받은 예수’라는 제목으로 비유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성바울 대성전 계단에 예수님이 서 계신 그림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스포츠 신문에 열중하는 청년, 휴가 여행을 위해 택시를 잡으려는 남녀, 길 가면서도 시험관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과학자, 그리고 손을 휘저어가면서 열렬히 토론하는 서너명의 신학자들이 있지만, 아무도 예수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간호원 한 명이 잠깐 멈추어서 곁눈으로 예수를 쳐다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토록 잘났다고 떠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정치 지도자들과 부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잘 믿는 것처럼 자랑하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율법사 등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강림을 알지 못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 그에 비하여, 동방박사 세 사람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은 거의 2년을 투자하여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들의 여행 목적은 오직 예수님을 만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이러한 여행은 목숨을 내어놓는 위험한 일이었고 또한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멀리 예루살렘에까지 왔고 결국에는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만난 그들은 그에게 경배드리며 예물을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예물은 미리 준비된 예물이었습니다. 먼 길을 오는 동안 소중하게 다루었을 것입니다. 보통 정성과 희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동방박사’는 그 당시에 별을 관측하여 장래 일을 예측하는 과학자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고대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널리 퍼져 있었던 ‘메시야 탄생 예언’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동쪽으로 먼 곳에 살던 그들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졌기에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그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3. 어떤 마음으로 만날까?
첫째로, 그들은 기뻐할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아기 예수께로 인도하던 별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기뻐하지 않을 것을 기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도 북동부 아삼주 사타차파리 마을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암탉 한 마리가 그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아이가 그 암탉을 붙잡고 자기 것이 되었다고 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와서 그 닭은 자기 것이가로 하면서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에는 살육전이 벌어져, 3명이 죽고 4명이 종신형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유다서 1:18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둘째로, 본문 9절과 12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은 순종할 것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순종하면 안 되는 것에 순종하였다면, 헤롯 왕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셋째로, 본문 11절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은 경배할 대상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경배 대상이 아닌 것에 경배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19/표준새번역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넷째로, 그들은 최고의 예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만 좋아하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인색함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졌었다면 결코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어떤 위대한 미술가가 친구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침 친구의 어린 딸의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로 받은 부채를 들고 나와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딸이 너무 예뻐서, 선물로 그 부채 위에 그림을 그린 후에 싸인을 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딸은 ‘내 부채에 낙서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면서 부채를 빼앗아 들고 도망쳤습니다. 그 아이가 만일 위대한 화가의 그림의 가치를 알았더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아마 ‘여기 부채가 있으니 제발 그림을 그려주세요’라고 부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채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부채로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가치를 안다면, ‘무가치한 내 인생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 인생에 주님을 만난 표시를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무익하던 우리의 인생은 최고의 가치를 가진 인생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세상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요, 안개 또는 풀꽃같던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간직한 인생으로 바뀔 것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처럼, 주님과의 만남이 최고의 기쁨이 되고, 오직 주님께만 순종하며, 오직 주님만 경배하고, 또한 주님께 최고의 예물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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