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24:14~18
(14)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16)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17)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I. 여호수아와 예수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라는 한 인물과 관련된 사건들을 기록한 책인데, ‘여호수아’라는 말은 히브리어 발음이고, 헬라어에서는 ‘예수스’라고 번역되며, 우리말로는 ‘예수’라고 번역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는 예수님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었고,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구원주로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 구원 역사에 있어서 두 사람의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입니다. 모세의 역할은 애굽에서 광야까지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었고, 여호수아의 역할은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들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함에 있어서 전도자의 역할과 예수님의 역할이 있습니다. 전도자의 역할은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모세의 역할처럼, 세상에 종살이하는 불신자들을 해방시켜서 광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직접 그들을 구원하거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광야로 나온 사람들을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직접 인도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게 하십니다. 여호수아의 역할이 바로 이 예수님의 역할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굉장한 인물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성경에서 사람 이름이 붙여진 최초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브라함과 모세이지만, 성경에는 “아브라함서”도 없고 “모세서”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배를 타고 북극에 있는 그린랜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바다 위로 두 가지 얼음덩이들이 떠내려가는데, 큰 얼음덩어리들이 떠내려가는 방향과 작은 얼음조각들이 떠내려가는 방향이 서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바닷물인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큰 빙산은 녹기까지 2년내지 10년이 걸리고, 물위로 나온 부분보다 잠긴 부분이 7-8배나 된답니다. 그래서 바다 깊숙한 곳에서 흐르는 조류를 따라 흐른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작은 얼음조각들은 바다표면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바람 부는 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지요.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중에도 두 가지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큰 빙산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함 없이 살아가는 성도들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이리 저리 방황하며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는 큰 빙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을 들어서 죽이려고 하였을 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염려했던 일들이 벌어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때, 여러 가지 염려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미리 ‘신명기’를 통해 지켜야 할 것들을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차지하자마자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야에서 당하였던 고난과는 또 다른 심각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 고난을 자기들에게 주셨다고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에 영국에 버터를 만들어서 제빵업자에게 납품하는 농부가 있었는데, 어느날 제빵업자가 그 농부를 ‘사기 죄’로 고발을 하였다고 합니다. 납품하는 버터의 무게를 속여서 공급하였기 때문에 큰 손해를 보게 되었으므로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오히려 제빵업자로 하여금 농부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농부는 저울이 없으므로 제빵업자가 가져오는 빵 덩어리의 무게를 기준으로 하여 버터의 덩어리를 만들었는데, 제빵업자가 무게를 속여서 만든 빵을 농부에게 배달하였고 농부는 그 빵 덩어리를 기준으로 하여 정확하게 버터를 납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고난의 원인이 자신들의 잘못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애매하게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지요.
만약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기 자신은 엉터리로 살면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 자신의 선택의 결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인간을 선택하셨지만,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는, 바로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1. 구원주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기를 더 좋아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풍성하게 되면,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더 멋있게 보이고, 더 능력과 힘이 잇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니라, 구원받은 자 자신이 그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큰 축복을 받고 행복해지더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2.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정되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되자, 세상의 신을 더 따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보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법칙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하나님의 법칙보다는 세상의 방식을 우선으로 여기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들을 응답받을 때,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마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3. 하나님의 축복을 교만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모든 복이 스스로 이룩한 것이라고 떠들면서 스스로를 섬기는 파렴치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받고 난 후에는, ‘아, 내가 열심히 했으므로, 내가 기도하였으므로, 내가 능력이 있으므로 이런 축복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복음’을 외치는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그러한 선택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 교만한 자 되지 마시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 앞에는 선택의 갈림길이 매일같이 다가왔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로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 속에서도 선택의 길림길이 매일같이 우리들 앞에 나타납니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선택을 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갈림길 앞에서 실패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III. 여호와를 선택한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오늘 본문 16절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17-18)
여호수아의 그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최고로 여기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목숨 바쳐 따르겠다’ ‘모든 축복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호와를 선택하고, 큰 빙산처럼, 여호수아처럼 변치 않는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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