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6:5~13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종교마다 나름대로의 기도 형식이 있습니다. 유대교는 정해진 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기도합니다. 마호멧교는 정해진 시간에 철저하게 기도합니다. 불교는 법문을 외우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기도합니다. 잡신을 섬기는 종교들 역시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나름대로 정해진 형식에만 맞으면 기도가 되는 것입니까?
기도의 효력이 마치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주문 외우듯이 기도하면 응답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아무 것이나 구하여도 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일방적인 요청이나 명령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한 기도가 되어야만 하며 상호 교통이 이루어지는 기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하면 될까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부터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1. 인간중심적 기도가 있습니다.
첫째로 5절 말씀에 외식하는 자의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기도합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함입니까?
둘째로 7절 말씀에 의하면 이방인의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하나님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도는 누구의 만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까? 결국 자기 생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과는 상관없이, 좋은 말들을 만들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러한 이방인의 기도를 "중언부언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 원어로는 batologeo입니다. 이 단어는 Batos라는 구레네의 말더듬이 왕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많이 하는데, 정작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대상과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의 주인이 하나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아이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작성하라고 하였더니 한 소년이 이렇게 썼더랍니다. "하나님, 건강에 유의하세요. 만약 하나님께서 아프시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6절),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무조건적으로 영웅적인 사람 곁에, 또는 다수의 사람 편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노예 해방을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지만, 서로 싸우고 총을 쏘고 죽이는 전쟁이었습니다. 남쪽과 북쪽이 다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양쪽이 다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싸웠습니다. 또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7년으로 길어지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때 에이브러햄 링컨의 참모들이 고민하다가,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다면 참 좋겠습니다. 전쟁의 향방을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라고 푸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건가? 나는 하나님께서 내 편에 계신지 안 계신지 의심해 본 일이 없네. 내 관심은 오직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내가 정녕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뿐이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링컨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 편에 섰기에 하나님이 도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8절) 하나님은 성도가 구하기 전에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성도가 기도하기 전에는 모르시는,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의해 속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말씀입니다.
올바른 부모라면 자녀가 요구하기 전에 자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녀가 정직하고 신실하게 그리고 본분에 맞게 간결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구하면 그 부모님을 크게 기뻐하면서 자녀의 요구를 들어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 그러하십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자들과 이방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성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응답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로, 아버지는 은밀한 중에 계시는 분이시므로, 너희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아버지는 구하기 전에 이미 아시므로 너희는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가르친 기도문은 무엇을 가르치려고 주신 말씀입니까? 기도의 형식입니까? 기도의 내용입니까? 아니면 기도자의 자세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 앞에 있는 말씀들의 의미를 먼저 깨달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도자와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기도자의 마음 자세가 먼저 정립되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 내용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형식이 뒤따라와야 합니다.
'기도와 경건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아씨시의 성자인 프란시스(Francis: 1182-1226)에게 친구 '베르나르도'가 찾아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자기의 성덕을 자랑하지 않기 위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뛰어들어 자는 체하였습니다. 베르나르도 역시 침대에 들어가 큰소리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척하면서, 성자가 어떻게 기도하는지 보고자 하였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베르나르도가 잠이 든 것으로 알고 살며시 일어나 눈과 손을 하늘 높이 쳐들어 지극한 경건과 타오르는 열정으로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이라며 기도하였습니다. 베르나르도는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하였지만, 성 프란시스는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하고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다시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베르나르도는 크게 실망하고 "성자라고 해서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성 프란시스의 기도는 한 마디 뿐이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 프란시스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하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베르나르도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아직도 외식하는 자처럼 또는 이방인처럼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처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의 자녀로서 그가 기뻐하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기도의 응답 속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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