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9:16~29 10/10/2004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복을 얻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방법과 인간적인 노력으로 얻는 복이 있습니다. 투자한 금액에 대해 1년에 20내지 30퍼센트의 이익을 얻으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여러 배로 이익을 얻는 특별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에 대한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신앙으로 복을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29절 말씀에 의하면, 여러 배로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까지도 보장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 30절은 이것을 좀 더 확실하게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러 배를 받는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7절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라고 말하고 있고, 29절에서 에수님은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버린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한국말에는 ‘무조건 포기한다’ ‘배반한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만, 원래의 원어적인 의미는 영어로 ‘let it go' 또는 ’let it escape'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에 대한 나의 주권 또는 주장을 포기한다’ 또는 ‘피차의 독자성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에 대한 부모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대개의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부모의 뜻대로 자녀들이 따라주기를 원하고 고집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를 버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자녀를 버렸다’는 것은 그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태도입니다.
29절에 보면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예수님이 언급하셨는데, ‘집’은 세상적인 안락함을, ‘형제자매’는 세상에서의 수평적 관계를, ‘부모자식’은 세상에서의 수직적 관계를, ‘전토’는 세상에서의 삶의 터전을 의미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것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 두 가지로 확실하게 구분될 수 있는데, 하나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이것들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I. 먼저 버리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를 봅시다.
어떤 농부가 복을 주시면 당장에 그 절반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매일같이 졸라대며 기도하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내가 소 100마리를 준다면 50마리를 나에게 바치겠느냐?’ ‘물론입니다. 50마리의 소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물어보셨습니다. ‘닭 100마리를 준다면 50마리를 바치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러면 돼지 두 마리가 있다면 한 마리를 나에게 바치겠느냐?’ 그랬더니 그 농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돼지 두 마리밖에 없는 것 하나님이 잘 아시잖아요?’라고 하더랍니다.
옛날에 태국의 왕들이 자기 신하에게 내리는 형벌들 중에 가장 무서운 벌은 그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흰 코끼리는 그들에게 매우 신성시되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못 먹어도 코끼리에게는 최고의 먹이를 주어야 하고 절대로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부자라도 흰 코끼리를 몇 년 동안 돌보면 완전히 재산을 잃고 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주의 흰 코끼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바로 그 ‘저주의 흰 코끼리’입니다. 자신이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을 위해 인생을 소모하다가 결국에는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저주의 흰 코끼리’입니다. 자녀의 성공이 하나님의 일보다 더 중요하다면,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뒤로 미룬다면,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좋은 수입이 아까워서 예배를 등한시한다면, 목숨이 아까워서 사탄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 사람은 커다란 흰 코끼리를 키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것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러 배 받고 영생을 성취하는 복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II. 성경에는 ‘버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세상의 법을 따르는 대신 율법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갈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버리지 못하였는데, 재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고 베드로가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27절에서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더 큰 것을 받기를 바라면서 주님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다 버렸다’는 말은 착각이었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세상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렸나요? 교회직분, 교인들의 칭찬, 출세, 자녀를 통한 보상의 욕심도 버렸나요?
성경에서 정말로 ‘버린 사람’ 을 꼽는다면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은 그가 과연 하나님을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00세에 얻은 가장 귀한 아들까지도 하나님을 위해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영원한 위대한 약속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III.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배를 받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편에 서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주님을 찾는 것은 아직 출발하지도 못한 달리기 선수와 같습니다.
둘째는 집착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보다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옆에서 신앙적으로 충고하거나 안내해 줄 수 있는 동무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예수를 좇아가는 것입니다. 최고 우선순위를 예수께 드리고, 항상 명령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좇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성도는 반드시 세상에서도 여러 배를 받아 누리고 영원한 생명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여러 배 받아 누리고 내세에 영생을 성취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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