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4, 2011

소낙비와 가랑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모든 생명체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저수지와 강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땅들이 갈라져서 어떤 식물도 자라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동물들은 물을 찾아서 떼를 지어 이동하지만,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하여 우물을 파는 등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비가 내리기를 고대하게 된다. 원시인들(오늘날까지도 그런 부류들이 많이 있지만)은 비를 내리는 신이 화가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제물을 준비하여 기우제(祈雨祭)를 드리기도 한다.

   가뭄에 지친 사람들은 대개 소낙비가 시원하게 내려지기를 갈망한다.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려서 모든 갈증이 순식간에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가뭄 끝에 소낙비가 올 경우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분이 없는 땅은 마치 벽돌처럼 견고해져 있기 때문에 수분을 다시 흡수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빗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삽시간에 큰 물줄기를 이루어 산사태와 홍수가 나는 등 또 다른 피해를 주게 된다. 많은 비가 시원스럽게 내렸지만, 땅 속까지 스며들지도 못하고 흘러갔기 때문에, 소낙비가 지나고 나서도 식물들은 여전히 소생하지 못하고 가뭄의 피해가 계속된다.

   우리말 속담에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라는 말이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비가 내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땅 속까지 잘 흡수되어 소낙비보다도 효과가 훨씬 더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다. 다만 가랑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조급한 마음이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랑비 따위는 아예 비로 여기지도 않기도 한다. 소낙비가 내려서 홍수의 피해를 당해보지 않으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인간들의 습성은 신앙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메시야를 갈망하며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을 때, 많은 무리들은 소낙비처럼 강력한 기적과 이사를 요구하였다. 무엇이든지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태도가 그들의 몸과 마음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오랜 가뭄 끝에 메말라버려서 돌짝밭같이 되었고 심령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낙비처럼 속시원하게 만들어줄 신비스러운 기적이나 이사가 아니라, 병든 인격체와 심령들을 치료해 줄 가랑비와 같은 은혜였다. 소낙비를 가지고서는 잠깐동안 그들의 감정을 만족시켜줄 수 있어도 결국에는 그들을 죽이게 되리라는 것을 예수님은 너무나도 잘 아셨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 편에서는 지성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 큰 기적을 베푸시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런 저런 일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소낙비처럼 잠깐 반짝하는 큰 일로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랑비를 맞듯이 우리들 자신의 인격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결단이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려는 대상이 이 세상의 큰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심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변화된 인격체를 찾으신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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