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걱정하면서 한숨만 쉬고 다니는 어떤 어머니가 있었다. 늘 우울한 모습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나중에는 친구들도 만나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한 친구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도와주고 싶어서 물어보게 되었다. 사연은 이러하였다. 그 어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이 장성하여 각자 자기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큰 아들은 우산을 파는 장사를, 작은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장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인지라, 두 아들 다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에게는 매우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한숨만 늘어가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작은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비가 오면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지 않을텐데, 오늘은 우리 작은 아들이 장사가 안되겠구나. 이놈의 날씨가 왜 이모양인가. 제발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또 큰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비가 와야 우산이 팔리는데, 이렇게 비가 오지 않아서야 우리 큰아들 식구가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이것 참 큰일이다.” 그러니 그 어머니에게서는 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작은 아들 걱정, 비가 오지 않으면 큰 아들 걱정... 이 말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비가 오면 누가 돈을 법니까?” “우리 큰 아들이지요.” “비가 오지 않으면 누가 돈을 법니까?” “우리 작은아들이지요.” “그러면 비가 와도 돈을 벌고 비가 오지 않아도 돈을 버니 얼마나 좋습니까?” 햇빛에 대한 고마움은 그늘이 있기 때문에 느껴진다. 그늘에 대한 고마움은 햇빛이 강할수록 더 깊어진다. 햇빛이 있으므로 그늘이 있는 법이고, 그늘이 있으면 당연히 햇빛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햇빛과 그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햇빛을 좋아하고 바란다면 그늘이 당연히 공존할 것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마다 동전을 바라보는 성향이 다르다. 그리고 동전의 양면을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볼 수 없다. 밝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밝은 면만 보게 된다. 어두운 면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밝은 면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은 생명이요 진리이다. 생명과 진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진리의 빛으로 오셨지만, 빛 가운데로 나아가기를 싫어하는 인간들은 여전히 그늘에 앉아서 빛을 피하였을 뿐만 아니라 빛 되신 예수님을 비난하고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다. 햇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늘이 짙게 깔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면 강할수록 흑암의 권세의 작용과 역사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늘이 분명하게 나타나면, 그 그늘을 원망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밝게 빛나고 있는 태양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빛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인 반면, 어두움의 열매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미움, 교만, 투기, 술취함, 방탕이다. 빛을 바라보고 나가면 빛의 열매가 맺힐 것이요, 그늘을 바라보고 나가면 어두움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더 많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빛인가 아니면 어두움인가? 오늘 하루의 삶을 빛의 자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어두움의 자녀로 살 것인가?-김태철 목사 |
Thursday, April 14, 2011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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